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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도 다이어트가 필요해
11/01/21  

냉장고를 열었을 때 먹을 것이 가득하면 냉장고 문을 여는 것이 즐겁다. 하지만 냉장고에서 어둡고 불편한 기운이 새어 나오기 시작하면 냉장고에 먹을 것보다 버릴게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신호다. 냉장실 안이 너무 가득 차서 뭐가 어디에 있는지 그 상태를 분간하기도 어렵고 냉동칸 문을 열면 뭔가 묵직한 게 내 발등으로 뚝 떨어질 것만 같아지면 내 가슴도 함께 답답해진다. 뚜껑을 열기조차 두려운 오래된 반찬들과 물러지고 썩어가는 야채와 과일들, 언제 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각종 소스들이 눈에 들어올까 봐 얼른 문을 닫아버리고만 싶다. 내일 해야지, 모레, 주말, 다음 주…... 그렇게 미루기를 냉장고 문 열고 닫듯이 반복하는 중이다. 

 

냉장고가 이지경에 이르면 집안 살림 중 끝판왕 수준인 냉장고 청소가 불가피해진다. 그리고 일단 뭐라 하는 사람이 없어도 괜스레 죄책감이 들기 시작한다. 엄마가 너무 맛있다며 일부러 가져다주신 떡들이 냉동칸에서 너무 꽁꽁 얼어 화석이 돼버린 지 오래다. 건강이 제일이라며 돈을 조금 더 주고 구매한 좋은 재료들이 나를 책망하기 시작한다. '내가 싱싱할 때 식재료를 사용하지 못하고 게으름을 부려서 그래. 집밥 대신 손쉬운 외식, 배달음식, 간편식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결국 이중으로 돈을 낭비를 했어. 아 나는 좋은 주부가 되기는 글렀구나! 티끌 모아 태산 이랬는데 우리는 알뜰살뜰 부자가 되기도 틀렸구나! 비워내는 심플한 삶에서 행복을 찾는 미니멀리스트, 지구를 사랑하는 환경 애호가는 더더욱 될 수 없겠구나!' 점점 생각할수록 한심해지네? 

 

자, 그렇다면 우리 집 냉장고는 왜 자꾸 과체중이 되어가는가?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가장 큰 원인은 온라인 쇼핑이다. 예전처럼 시장에 가서 그날 먹을 것을 몇 가지 사 오는 형식이 아니고 거의 모든 것들을 온라인으로 구매하다 보니 너무 편리해서 너무 사들이게 된다. 두 손 무거워서 덜 사게 되는 일도 없고, 나가기 귀찮아서 안 사는 일도 없다. 게다가 무료 배송 혜택을 받기 위해 일정 금액을 채우다 보면 당장 필요한 몇 가지 외에도 이것저것 주워 담게 된다. 게다가 온라인 쇼핑 특성상 유통기한도 직접 확인할 수 없으니 이것 또한 문제이다. 너무 싸서 꼭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구매한 제품들은 유통기한이 임박하거나 애초부터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들인 경우가 많아 결국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일이 다반사다. 그럼 정작 싸다고 구입했지만 결국 쓰레기로 배출하면서 오히려 돈을 지불하는 셈이 된다. 

 

온라인 쇼핑을 통해 신선한 식재료들이 배달되었다고 치자. 그럼 적어도 그날만큼은 최대한 식재료들을 모두 활용하여 있는 솜씨 없는 솜씨 모두 끌어모아 홈푸드로 한상 차려내야 하는 것이 맞다. 가정주부로서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고 어려울 일도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이 어디 그렇게 내 생각처럼 호락호락하던가? 전기밥솥이 뚝딱 해주는 밥조차 안치기 싫은 날도 있고 냉장고에 먹을게 가득해도 라면에 김치가 절실한 날도 있다. 뭐라도 만들어 먹으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갑자기 친구가 밥 먹자고 불러내는 날도 있고 다른 가족의 초대를 받기도 한다. 그럼 또 그렇게 식재료를 활용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 

 

우리 집 냉장고가 포화상태가 되는 데는 남편도 톡톡히 한몫한다. 형편없는 살림살이라고 해도 나도 나름 계획을 세우고 스케줄을 고려해 식재료를 주문하는데 가끔씩 남편이 아무런 상의도 없이 냉장/냉동 음식을 주문하기 때문이다. 돈가스 6팩, 냉모밀 6팩, 돼지갈비 6팩 이런 식으로 그 부피가 만만치 않아서 이게 뭐 대충 쓱 끼워 넣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결국 냉동칸을 다 뒤집어엎고 소싯적 테트리스 게임하던 실력을 동원해 다시 맞춰 내야 한다. 참고로 오늘 아침에도 남편이 상의 없이 주문한 곰탕과 떡볶이 패키지가 집 앞으로 배달되었다. 

 

아! 뻔히 알면서도 왜 이런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하는 걸까? 생각을 정리해보건대 결국 주원인은 게으름에서 온다. 양파가 필요하면 조금 귀찮더라도 집 앞 야채 가게에서 양파만 사 오면 될 일이다. 냉동칸에 다양한 냉동식품을 쟁이는 대신에 그때그때 먹고 싶을 것을 신선하게 만들어 먹으면 된다. 살까 말까 망설여질 때는 안 사면 그만이고 세일한다고 무턱대고 사들이는 것을 삼가야 한다. 

 

사람이나 냉장고나 과식이 문제다. 옷장에 옷이 많다고 입을 옷이 많은 것도 패셔니스트가 되는 것도 아니듯이 냉장고를 아무리 채워도 다 먹을 수 없다. 음식은 상해서 못 먹게 되고 옷은 유행이 변하든, 내 몸이 변하든 결국 못 입게 된다. 그러니 욕심부리지 말자. 비워야 여유가 생기고 내 마음도 가벼워진다. 그나저나 오늘도 남편이 공원으로 단풍 구경 갔다가 외식하자고 했는데 어제 끓인 김치찌개는 냉장고에 넣어야겠네. 휴우…... 주말엔 기필코 냉장고 파먹기(비우기) 도전해야지! 냉장고 다이어트 꼭 성공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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