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1.5세 아줌마
홈으로 나는야 1.5세 아줌마
등산 위드 코로나
11/08/21  

요즘 나는 등산에 푹 빠졌다. 내가 어찌나 등산 이야기를 많이 했던지 결국 주변 친구들도 하나둘 동화되어 등산화를 구입하고 등산 스틱을 검색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등산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할 뿐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등산은 뭔가 고리타분한 중장년층들의 운동이었다. 부모님 간청에 억지로 끌려가는 산, 회사 부장님 제안에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오르는 산이라는 이미지가 강렬했다. 등산복을 일상복처럼 즐겨 입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가입한 산악회에는 다툼과 불륜이 빈번하고 등산 후 얼굴이 빨개지도록 술을 마신 등산객이 순식간에 취객이 되어있는 광경은 보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랬던 나는 오늘도 산에 다녀왔다. 8월 말에 첫 등산을 시작한 이래 10번째 산행으로 2주에 한 번 꼴로 산에 오른 셈이다. 다음 산은 좀 더 수월할까? 조금 덜 힘들까? 조금은 몸이 가벼워졌을까? 기대해보지만 단 한 번도 쉬웠던 적은 없다. 그렇다. 나는 여전히 등린이(등산 + 어린이) 신세다. 두 달 만에 일취월장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호흡이라도 좀 편안해졌으면 싶었다. 매번 경사가 가파른 오르막을 오를 때면 걷잡을 수 없게 솟구치는 심박수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정말 신기하게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몇 번의 심호흡 후 물을 한 모금 마시면 정말 거짓말처럼 멀쩡해진다. 그래서 매번 정말 힘겹게 산에 오르지만 또 뭔가에 홀린 것처럼 등산을 마치고 나면 다음 산행을 기약하게 된다. 

 

오늘은 친하게 지내는 동네 친구들 세 명과 집에서 멀지 않은 검단산에 다녀왔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 제대로 된 등산은 처음이라고 망설였지만 막상 약속한 날이 오자 나름 어디선가 그럴듯한 등산복 차림에 등산화와 배낭을 갖추고 나타났다. 검단산은 높이 657미터에 산세가 험하지 않아 등산 초보는 물론 초등학생도 가뿐히 오를 수 있다는 후기에 힘을 얻어 산행을 시작했다. 초반에는 내가 앞장섰으나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며 몸이 가벼운 친구가 자연스레 선두에 섰다. 그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끙끙거리다가 하하호호 웃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와있었다. 

 

하산 길은 완만한 코스를 선택해서 단숨에 뛰어내려 갈 줄 알았더니 웬걸, 낙엽이 비처럼 떨어지는데 평일이라 등산객이 별로 없다 보니 땅에 낙엽이 수북이 쌓여 발을 내딛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낙엽 밑에 뭐가 숨어있는지 알 수 없었고 마른 낙엽더미는 또 어찌나 미끄럽던지 그립이 좋다는 고가의 등산화도 속수무책으로 미끄러졌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 보니 올라갈 때보다 다리에 힘이 더 들어가고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래도 결국 아무런 부상이나 낙오자 없이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고 등산의 하이라이트인 인근 맛집에서 얼큰한 칼제비(칼국수 + 수제비)도 뚝딱했다. 

 

나를 비롯해 이제 내 주위 친구들도 슬슬 관심을 갖게 된 것처럼 요즘 등산 입문자 등린이가 대세다. 등산이 한때 아재들의 취미 생활이고 부장님의 문화였다면 요즘에는 수많은 MZ세대들을 정상에서 만나게 된다. 이들은 가벼운 레깅스와 티셔츠 차림으로 산에 오르고 정상석 인증샷을 SNS 남기며 자연 속에서 운동과 힐링을 동시에 즐기는 눈치다. 

 

어찌 보면 연령의 벽을 허물고 남녀노소 등린이가 많아진 것도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며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레 자연으로 모이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조치로 실내 활동이 제한되면서 조금은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산으로 모이는 것이다. 그럴 만도 한 게 우리나라는 국토의 2/3가 산으로 일단 접근성이 너무 좋다. 어디서든 고개만 돌리면 바로 산을 찾을 수 있고 히말라야 오를 기세로 장비를 갖추지 않아도 산책 차림만으로 오를 수 있는 이름 모를 동네 산도 많다. 게다가 가을은 등산의 계절이 아닌가…… 날씨도 좋고, 바람은 시원하고 산은 알록달록 예쁘다. 그래서 수많은 등린이들은 산에 부름을 거부하지 못하고 또다시 헉헉 거리며 산을 오른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특정 연령층뿐 아닌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등산에 관심을 갖고 자연을 느끼고 만끽한다는 것은 참 근사한 일이다. 그리고 이제 막 등산에 입문하고 분위기 파악 중인 1인으로서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처음 친구들에게 등산을 시작했다고 했을 때 "등산? 아직 그럴 나이 아니잖아?"와 같은 반응을 보였는데 같이 산에 올라 수많은 MZ세대들을 목격하고는 우리 모두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고 더 자신 있게 등산을 즐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저질체력에 마스크와 함께하는 산행이 결코 쉽지 않지만 나를 아무런 편견 없이 친절하게 환대해준 산에게 고마워서 한동안 쭉 산에 오를 것 같다. 

그래서 내일도 등산 예약!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