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난, 구인난
11/15/21  

타운뉴스 옆에 커다란 오피스 단지가 있다. 규모가 제법 큰 교회가 셋이나 들어 있을 정도로 큰 단지다. 지난봄부터 그 단지 곳곳에 사람을 구한다는 팻말이 세워지기 시작하더니 그 팻말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하긴 우리가 자주 들르는 샘스클럽이나 코스트코, 아마존 등에서도 직원을 뽑는다는 광고를 하고 있다. 사람 구하기가 어렵긴 어려운 모양이다.

 

코로나19 확진자수가 감소함에 따라 사무실 근무로 전환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사직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재택근무에 익숙해진 직장인 중 일부는 종전처럼 매일 출근하지 않고 유연하게 근무하기를 원하는 것이 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의 지난달 조사에 따르면, 근로자 81%가 "사무실 복귀를 원치 않거나 재택근무와 사무실 출근을 병행하고 싶다"고 답했다.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더라도 과거처럼 매일매일 출근하고 싶지 않다는 거다. 또한 채용 사이트 '몬스터 닷컴'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근로자의 95%는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 기존 일자리와 완전히 다른 업종으로 전환할 의향이 있는 근로자도 9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CNBC를 비롯한 미국 언론들은 코로나19 기간 동안 많은 근로자들의 가치 평가 기준이 바뀌었고 최근 심화되는 구인난은 근로자의 선택 폭을 한층 더 넓혀주고 있다면서 '대 사직(the Great Resignation)'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 섞인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실제로 미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4월 퇴직자 수는 400만 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고, 퇴직률도 2.7%에 달했다. 8월에는 약 430만 명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하면 1.1% 증가한 수치인데 200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구인난이 심각해지자 주 정부는 실직자에게 지급하던 긴급 현금 지원금을 앞다퉈 줄이고 있다. 실제로 26개 주가 실업 수당을 중단했고, 이 중 22개 주는 자영업자와 단기 임시고용직, 프리랜서에 지급하던 팬데믹 실업보조금도 종료했거나 축소했다.

 

노동부에 따르면 4월 미 기업의 구인 규모는 930만 명으로 퇴직자 수의 배 이상이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사표를 던지고, 새 일자리를 찾아 떠날 수 있다는 얘기다. 사회학자들은 '펜데믹 기간 동안 사람들이 세상을 다르게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향후 몇 년간 엄청난 대 이직을 목격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렇게 사람을 채용하기가 어려워지자 기업들이 학력과 경력 등 채용 문턱을 대폭 낮추고 있다. 미용제품 소매업체인 더바디샵은 구직자들에 대한 학력 요건과 신원조회 절차를 철폐했다. 근로자를 뽑을 때 학력과 경력을 묻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 회사가 소매, 창고 분야의 일반 신입사원 733명을 뽑을 때 구직자에게 물어본 질문은 합법적으로 일할 자격이 있느냐와 25파운드의 무게를 들 수 있느냐 밖에 없었다.

 

대형 약국체인 CVS헬스도 올해부터 대부분의 신입사원 채용에서 고교 졸업장 제시를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노동시장 분석업체 EMSI는 현 상황이 계속될 경우 앞으로 5년 동안 대학을 나오지 않은 구직자에게 140만 개의 일자리가 더 생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기업들의 자격 요건 완화로 수백만 구직자가 과거에는 지원조차 할 수 없었던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게 됐다.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사직의 물결은 내 곁에서도 출렁이고 있었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집에 들른 아들이 느닷없이 직장을 그만둘 생각이라고 말해 깜작 놀랐다. 보스턴에서 일하다 펜데믹으로 재택근무를 위해 집에 온 아들이 팬데믹이 끝나더라도 보스턴 본사로 복귀하지 않고 계속 재택 근무하기로 했다며 좋아하던 때가 불과 몇 달 전이었기 때문이다. 사직을 생각하게 된 이유를 물으니 매일 아침 6시(보스턴 시각 9시)부터 책상에 앉아 화상으로 미팅을 하며 일하기 싫고, 무엇보다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 농구팀 코치를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지금도 모교 농구팀의 일부 선수들을 모아 Volunteer 코치를 하면서 함께 연습하고 그들을 데리고 시합에도 나가고 있는데 이제는 그 일을 봉사가 아니라 직업으로 삼고 싶다는 것이다.

 

아들까지 사직 현상에 합세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직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아들이 사직을 고려하게 된 것도 결국 코로나19 펜데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만약 펜데믹이 없었다면 아들은 지금 보스턴에서 평범한 셀러리맨으로 생활하며 좋아하는 농구는 쉬는 날 즐기면서 살아가고 있을 테니 말이다. 아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가 오랫동안 숙고해왔음을 알게 되었다. 아들이 좋은 결정을 내려 인생을 마음껏 즐기며 살기를 바란다.

 

동전의 양면처럼 지금의 사직 사태는 취업 희망자들에게 더 좋은 직장을 구하는 기회, 업체의 입장에서는 더 좋은 직원을 채용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타운뉴스 옆 오피스 단지 곳곳에 붙어 있는 구인 팻말이 하루 빨리 내려지기 바란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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