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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THANKSGIVING!
11/22/21  

추수 감사절을 맞이할 때마다 미국 이주 첫해를 떠올린다. 별다른 계획 없이 지내려는 우리 식구를 친구가 집으로 초대했다. 친구 집에는 친구 처가 식구들, 친구 어머니와 두 여동생 부부, 또 그들의 자녀들, 필자의 아이들까지 북적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오후 내내 칠면조를 구웠고, 뒤뜰에서는 바비큐를 하며 술을 마셨다. 저녁이 되어서야 잘 구워진 칠면조와 으깬 감자에 그레이비를 얹어 먹었다. 하루 종일 먹고 마시면서 웃고 떠들며 지냈다. 따듯한 사랑과 감사가 집안 곳곳에서 흘러넘쳤다. 말로만 듣던 미국의 전통 추수 감사절을 처음으로 직접 경험한 셈이다.

 

그 다음 해부터는 집에서 식구들과 지내고 있다. 나도 미국에 처음 이주한 친구 가족들을 초대하기도 했다. 커다란 칠면조를 사다가 하루 종일 오븐에서 구우며 감자 요리도 만들었다. 요리책을 봐 가면서 구워 낸 칠면조라 맛이 어떨까 걱정했는데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낯설기만 했던 추수 감사절 요리를 직접 만들어 먹어보니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바로 추수 감사절 기간이 미국에 정착해 살고 있다고 실감하는 때이다.

 

언제가부터 조리된 칠면조를 마켓에서 사다 먹기 시작했다. 칠면조뿐만 아니라 추수 감사절용 음식을 패키지로 주문하고 찾아다 먹는 아주 간편한 방법을 택하니 훨씬 가뿐했다. 칠면조가 별로 내키지 않는 해는 갈비찜이나 만두 등 한국 음식으로 추수 감사절 상을 차리기도 한다. 각 가정마다 입맛이 다르니 원하는 음식으로 차려 먹으면 된다. 그동안 추수 감사절 상을 거쳐 간 음식들은 한국식, 중국식, 일본식, 멕시코식 등등 이민의 나라 미국답게 아주 다양하고 풍성했다.

 

그동안 미국에서 지낸 추수 감사절을 생각하노라니 만감이 교차한다. 유난히 올해는 미국에서 살아 온 28년을 많이 회상하게 된다. 이민 생활을 하면서 거쳐 간 모든 인연과 일어난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할 것들로 가득 차 있다.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겠지만 정신없이 살다보면 감사한 마음을 잊게 된다. 그나마 매년 11월에 들어서서 추수 감사절이 다가오면 좀 차분히 생각해 보는 편이다. 추수 감사절의 유래나 의미를 거론하며 뜻있게 보내자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추수 감사절은 일종의 연례쉼표라고 생각한다. 바쁘고 정신없는 우리의 삶을 잠시 쉬어가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져 보는 시간이다. 앞만 보고 치닫는 가파른 삶을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조용히 돌아보게 만드는 고마운 장치이다. 바쁜 일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잠시 쉬었다 가자.

 

해마다 이맘때면 추수 감사절 분위기가 물씬 풍겼고, 마켓이나 상점들도 절기에 맞춰 풍성하게 단장을 하고 깊은 가을 추수 분위기를 연출해 마음이 푸근했었는데 지난해에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조용하게 지나갔다. 심지어 보건당국의 이동 제한 권고에 따라 서로 타지에서 떨어져 살던 가족들 가운데는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코로나19 때문에 가장 미국적인 명절, 추수 감사절마저 위축된 마음으로 보내면서, 내년에는 온 가족이 모여 웃음꽃을 피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심한 듯하다. 불과 일주일 후면 추수 감사절인데 아무도 추수 감사절에 대해 얘기를 꺼내는 사람이 없다. 극심한 불경기가 계속되다 보니 우리들 마음도 침잠되어 그런가 보다. 사실 그럴수록 더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겁고 유쾌하게 보내야 하지 않을까.

 

감사해야 할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떠올리며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직접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그렇지 않으면 전화나 이메일 등으로라도 감사의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감사의 마음을 담은 선물도 주고받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감사의 마음만은 꼭 전해 함께 행복을 나누도록 하자.

 

‘감사하는 것’은 삶을 되돌아보는 일이다. 감사가 없는 삶은 공허하고 힘이 많이 든다. 지나치면 슬픔과 좌절을 경험하게 되고 건강까지 해치게 된다.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주위의 모든 것을 둘러보고 내 자신의 위치를 재점검하면서 큰 그림 속의 자신을 돌아볼 때 감사는 저절로 따라 온다.

 

올해는 추수 감사절상에 어떤 음식이 올라올지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올해도 가족, 친지들과 함께 추수 감사절 상 앞에 모여 앉아 감사와 사랑을 나눌 것이다. 그것이면 족하다. 그리고 오늘까지 살아오는 동안 주어지고 이루어진 모든 것에 감사한다. 아울러 이민 첫해에 우리 가족을 초대해주었던 친구, OC 영락교회 오광훈 장로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HAPPY THANKSGIVING!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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