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1.5세 아줌마
홈으로 나는야 1.5세 아줌마
안 살 수가 없었다
11/22/21  

바람, 여자, 돌이 많다는 삼다도, 제주에 다녀왔다. 일 년에 몇 번씩 다녀오는 사람들도 많던데 나는 이번이 첫 방문이었다. 언제가 한 번은 가야지 싶었는데 이상하게도 기회가 닿지 않아 이제야 다녀올 수 있었다. 제주에 가보니 이제야 알 것 같다. 사람들이 제주에 열광하는 이유를......

 

우리 동네에서 가장 솜씨 좋던 미용실 원장님이 제주로 이주할 때도, 지인이 한 해에도 수차례씩 제주를 드나들 때도 그런가 보다 시큰둥했는데 하나밖에 없는 친오빠가 갑자기 제주로 이주할 때는 이게 뭔 일인가 싶었다. 그런데 제주에 도착해 이틀째 되는 날부터 뭔가 알 것만 같았다. 날씨 변화무쌍하고 물가 비싸고 초보 장롱면허 들고 렌터카 핸들 잡은 드라이버가 넘쳐 도로가 위험천만한 제주를 왜들 다 그렇게 좋아하는지......

 

제주는 사랑에 빠지기 충분했다. 높은 빌딩이 빼곡한 서울과 달리 어디서든 하늘이 잘 보이고 검은 돌과 모래가 특색 있는 멋진 해변, 국립공원급 아름다운 산책로가 여기저기...... 그 안에 머물고 숨 쉬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자연친화적인 곳이었다. 

 

우리집 아이들은 여행 내내 한시도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얘네가 원래 이렇게 에너지가 넘쳤던가? 정말 온종일 뛰어다니는데 저러다가 다음날 앓아눕는 건 아닌가 염려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고 일어나면 또 멀쩡해져서 피곤한 기색 없이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흐르고 마지막 밤이 되자 아이들은 하나같이 제주도를 떠나는 게 너무 아쉽다고 했다. 우리 아이들이 제주에서 머무는 4박 5일 동안 재미있었던 것으로 손꼽은 것 중 하나는 승마 체험이었다. 

 

제주도에 왔으니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체험을 해보는 게 좋겠다 싶어 말 체험을 검색했다. 사진 찍기 예쁘고 후기가 많은 곳은 체험비가 비싼 편이고 또 너무 저렴한 곳은 후기가 아예 없어서 뭔가 미심쩍었다. 가격, 시간, 퀄리티, 위치 등을 고려하고 체험비가 저렴하면서도 후기가 적당히 올라온 곳으로 선택했다. 대체적으로 양호한 후기였지만 단점으로 촬영을 위해 다짜고짜 마스크를 벗긴다, 사진을 강매해서 기분이 언짢았다 같은 후기가 꽤 있었다. 그래서 나는 호구가 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며 큰소리쳤다. "사진은 내가 찍어도 되니깐 영업에 절대로 넘어가지 말아야지!" 

 

일단 말 체험 옵션을 고르고 체험비를 선불로 지불하면 직원이 나와 아이들에게 모자를 씌우고 말을 지정해준다. 그리고 갑자기 마스크를 벗으라고 한다. 내가 먼저 묻지도 않았는데 마스크를 쓰면 말이 놀랄 수도 있다며 횡설수설한다. 흠...... 이게 무슨 소리? 이게 그 후기 속에 등장했던 사진 강매의 전초전인가...... 분위기가 스스로 벗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벗길 기세였고 우리 아이들은 온순한 양처럼 바로 마스크를 벗어젖혔다. 그렇게 말에 올라타면 부모에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을 잠시 준다. 쉴 새 없이 촬영 버튼을 눌렀지만 배경이나 구도가 영 탐탁지 않네...... 싶던 찰나 아이들의 말이 출발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한 바퀴를 돌고 아주 만족스러운 얼굴로 제자리로 돌아온다. 곧이어 어떤 사무실로 들어가 카우보이 모자를 쓴 여성들의 안내를 받는다. 그들은 노련하게 모니터 앞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나는 절대 넘어가지 않겠다고 두 번 세 번 다짐을 했음에도 궁금함을 못 이겨 그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만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넘어갈쏘냐? 절대 안 넘어간다. 내가 세일즈 천국인 미국에서도 그리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유사한 경험으로 스냅사진 이벤트 촬영, 씨월드, 디즈니랜드, 멕시코 크루즈, 캐나다 크루즈에서도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이 커다란 카메라를 휘두르며 찍은 꽤 근사한 샘플 사진을 내밀었을 때도 단칼에 "노땡큐"를 외쳤던 나이다. 내가 이런 어설픈 아줌마들에게 넘어갈 리 없다 했지만 모니터로 시선이 이동했을 때 이미 나의 동공은 흔들리고 있었다. 모니터 속에 말에 올라탄 우리 아이들 사진 서너 장이 아주 빠르게 휘리릭 지나가는데 내가 찍은 사진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었다. 참 별일이다. 아까 코 앞에서 실제로 봤을 때 분명 비실비실해 보였던 조랑말이 사진 속에는 늠름하니 윤기가 좔좔 흐르는 명품 경주마 같아 보인다. 돌담이 나온 배경은 뭔가 제주도스럽고 아이들 표정도 꽤 마음에 들어 어느새 나는 남편 얼굴과 사진을 번갈아가며 보고 있었다. 남편이 작은 목소리로 "사진 안 산다며?" 할 때 나는 이미 신용카드를 챙기며 "아니...... 이건 정말 안 살 수가 없네......"하고 있었다. 

 

집에 와서 액자를 꺼내보니 뭔가 당한 기분이 들었다. 그곳에서 봤을 때는 분명 꽤 그럴듯해 보였던 액자는 허접하기 짝이 없고 사진도 마치 가정용 컬러 프린터로 출력한 듯 퀄리티가 영 별로다. 대체 내가 뭐에 씌어서 덜컥 사진을 사고 말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배보다 배꼽이 큰 체험이었지만 말 위에 올라탄 우리 아이들의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니 '없는 형편에 승마를 가르쳐야 하나...... 겁도 없고 즐거워 보이네.'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간다. 엄마 마음이 이렇다 보니 다소 바가지 쓴 듯한 기분이 들지만 도저히 안 살 수가 없었다. 

 

제주도 말 체험장 후기: 체험 후 모니터를 보면 사진을 안 살 수가 없으니 조심할 것!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