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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표
11/29/21  

시중에 빠르게 전파되는 사진이나 글을 가리켜서 밈(Meme)이라고 한다. 본래 밈은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문화의 진화를 설명할 때 처음 등장한 용어로 생명의 진화 과정에 작용하는 자기 복제자의 한 종류를 가리켰다. 그러나 밈은 현재 다양한 사회 현상과 문화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생각, 말과 행동, 복장, 음식, 습관 등 그 어떤 것도 밈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1987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각계 각 분야에서 ‘보통사람’이라는 말이 유행하던 적이 있다. 이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선거 구호로 내세웠던 ‘보통사람’이라는 말에서 시작된 밈이라고 볼 수 있다. 분명히 노태우는 보통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보통사람’이라는 말로 사람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고, 그 ‘보통사람’이라는 말이 대통령 당선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엄밀히 말한다면 이 세상에 보통사람은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특별하기 때문이다.

 

9시 땡하면 대통령 얼굴이 화면에 등장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 또한 신군부라 불리는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각 방송사들이 앞다투어 전두환 정권을 향한 충성심에 행하던 밈이 아닐었을까 싶다. 또 전두환과 외모가 흡사한 탤런트를 방송사들이 출연시키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이 또한 밈이라면 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한때 밈을 일으키는데 크게 영향을 끼쳤던 두 전직 대통령이 4주 간격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을 떠났다. 노태우, 전두환,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생들이다.

 

이들은 사관학교에서 만나 한평생 인생의 궤적을 함께 했다. 12.12 군사 반란의 주역이며 5.18 광주 민주화 투쟁을 유혈 진압하여 권력을 잡고, 그 뒤를 이어가며 대통령을 했다.

 

노태우의 경우 늦게나마 후회와 반성의 태도를 보이긴 했지만 그들이 국민과 국가에 끼친 과(過)를 씻어낼 수는 없다. 그러나 전두환은 끝까지 뉘우치거나 용서를 빌기는커녕, 잘못을 인정조차 하지 않았다.

 

특히 전두환은 총칼을 앞세워 대통령에 올랐고, 재임 기간 중에 인권과 언론 탄압, 정격유착, 비자금 조성 등의 역사적 과오를 범했다. 퇴임 후 군사반란과 광주 유혈 진압에 대한 재판 이후 대법원 확정판결로 그는 내란수괴, 내란 목적의 살인 혐의로 수감되었고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바 있다. 또 법원은 재임기간 그가 갈취한 2,205억 원을 토해 내라고 했지만 수중에 29만 원밖에 없다는 궤변으로 국민을 우롱했다.

전두환이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사람들은 그가 무릎 꿇고 사죄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쿠테타로 정권을 빼앗은 ‘반란의 수괴’,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을 학살한 ‘시민 학살 책임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싹을 자른 ‘독재 괴수’라는 많은 수식어를 뒤로 하고 90년의 삶을 마감했다.

 

권력을 찬탈한 뒤에 제 11대, 12대 대통령으로 군림하면서 평생 살 것처럼 천하를 호령하던 전두환이었지만 그의 노년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가끔 TV와 신문 지상에 그의 기운 없고 병색 가득한 모습이 잡힐 때마다 세월 앞에는 권력도 돈도 아무 짝에 쓸모없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들의 죽음으로 한국 현대사의 한 장이 마침내 마침표를 찍었다. 그들의 죽음과 함께 우리의 어두웠던 역사의 기억들도 떠나보내자. 더 이상의 쿠테타로 권력을 찬탈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아울러 막무가내 식으로 밀어붙이는 그 어떤 독단적인 권력의 등장도 막아야 한다. 국민의 의사는 무시되고, 대통령과 다수당에 의해 마음대로 좌지우지되는, 자기들을 따르는 무리들만을 위한 정치가 횡행(橫行)하는 나라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2022년에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서 대립과 갈등을 넘어서는 화합과 대화의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밈’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재현과 모방을 되풀이하며 이어지는 사회적 관습이나 문화‘라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 역사에 어둡고 암울했던 시대의 밈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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