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 열풍
04/23/18  
두 달 동안 미전역을 뜨겁게 달구던 파워볼 1등 당첨자가 나왔다. 캘리포니아주와 테네시주, 플로리다주에서 각각 1장씩 당첨 복권이 팔린 것으로 밝혀졌다. 모두 6개 숫자를 맞혀야 하는 파워볼의 1등 당첨 확률은 2억 9,220만 분의 1이다. 이는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은 것이다. 당첨금은 사상 최고 금액인 16억 달러라고 한다. 지금까지 미국 내 복권 당첨금 최고액, 2012년 3월에 나온 6억 5,600만 달러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살리나스에서 가게를 하는 지인은 지난 수요일과 토요일 마감시간 2시간여를 남겨두고 복권을 사려고 밀려오는 사람들 때문에 가게가 복권판매 전문업소로 바뀌었다고 했다. 아리조나 피닉스에서 가게를 하는 지인도 마감하는 날 아침, 가게 문 열고 1분 만에 복권을 100달러나 팔았다며 뜨거운 열기를 전해주었다. 마감을 몇 시간 앞두고는 미전역에서 시간 당 1백만 장 이상이 팔려나가는 통에 복권 용지가 바닥날 정도였다고 하니 그 열기를 짐작할 만하다.
 
 
사람들이 이렇게 복권에 열광하는 데에 언론이 한몫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언론의 영향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경기가 어려워져 먹고 살기 힘든 현실에서 일확천금을 꿈꾸지 않을 이가 어디 있단 말인가.
 
 
바빠서가 아니라 게을러서 이번에는 복권을 사지 못했다. 사러 가야지 하면서 벼르기만 하다가 그만 살 기회를 놓쳤다. 그러나 눈과 귀를 열어 두고 있었다. 발표 전보다 그 열기가 식기는 했지만 당첨번호가 발표된 후에도 복권이야기는 여전히 세상을 뜨겁게 하고 있다. 당첨자라고 한 여성의 드라마틱한 사연을 어느 신문에서 보도하자, 수 시간 뒤 이 사연이 거짓이라고 ABC 방송이 보도했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트위터 등 SNS에 관련사진과 당첨번호가 인쇄된 복권 등을 올려놓고 있다.
 
 
당첨금 액수가 천문학적 숫자가 될 때마다 사람들은 열광한다. 평소에 무관심하던 사람들도 복권을 사지 않으면 큰 기회를 놓친다고 착각을 일으킨다.
 
 
복권을 산 모든 사람들은 이번에는 자신이 꼭 당첨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복권 열풍에 휩싸인 수많은 사람들이 집단 최면에 걸려있는 것이다. 집단적, 일시적으로 정신이상을 일으킨다고 말하면 과언일까? 일시적으로 정신이상을 일으킨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된 것이고 비정상적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광기(狂氣)를 이성에 의해 억압된 우리 의식의 또 한 형태로 보았다. 비이성적인 사유라는 것이다. 역시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제한되었을 뿐이지 광기 또한 이성의 한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사유의 순간에 주체로부터 광기도 배제되지 않았으므로‘사유의 한 사례’로 보았다. 후자의 입장에서 데카르트 식으로 표현한다면“내가 미쳐있든 아니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복권을 놓고 철학적 고찰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단지 천문학적 당첨금이 일시적으로 일으키는 비이성적인 현상이 흥미롭다. 평소에 억눌려 있던 욕망을 마음껏 분출시키고, 이성적으로는 가동되지 않는 상상력에 제동을 걸지 않고 마음껏 펼쳐본다. 정신적으로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도 있다.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복권을 만져 보면서 머릿속으로는 온 세계를 여행하고, 대저택의 주인이 되어 행복한 삶을 시작하며, 마음껏 베풀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영영 돈 걱정을 하지 않게 된다. 얼마나 통쾌하고 시원한가.
 
 
그 순간에 그런 상상이 비이성적이고 미친 생각이라며‘꿈 깨!’라고 꾸짖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당첨 발표가 나올 때까지 희망에 부풀어 있는 그 시간은 이성과 비이성이 화해하고, 광기가 이성을 도와 삶에 지친 심신을 푸근하게 쉴 수 있는 평화와 안식의 기간인 것이다.
 
 
복권 당첨의 가능성은 일생에 비행기 추락 사고를 두 번 당하는 확률과 같다고 한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이다. 그 수학적 계산만을 염두에 둔다면 복권을 사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당첨금 액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이성의 제어는 서서히 사라진다. 평소에 눌려져있던 애교스런 광기가 스멀거리며 나올 때 사람들은 복권을 사러 달려간다.
 
 
그 미묘한 군중심리를 이용해 복권 판매가 성공적으로 유지된다. 집단 최면과 집단 광기가 일시적으로 반복되는 현상이 씁쓸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힘들고 지루한 일상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는 점에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어쨌든 희망을 가지고 기다린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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