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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페의 추억
12/06/21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뷔페를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 나는 아무래도 전자에 속한다고 봐야겠다. 

 

며칠 전 친구가 고가의 호텔 뷔페에 데려갔을 때도 나는 몹시 신이 나있었다. 다이어트 중이었지만 이날만은 치팅데이(치팅데이가 어디 이날뿐이겠는가?)라 선언하고 나름 전략적으로 먹기에 도전했다. 차가운 샐러드와 회로 시작해서 중국 요리와 양고기로 이어져 파스타와 빵, 치즈로 느끼함이 극에 달할 때 담백한 쌀국수 그리고 커피와 디저트, 과일로 마무리하는 코스였다. 100가지가 넘는 음식을 앞에 두고 선택과 집중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했고 나름 고가의 회, 양갈비, 홍게, 육회 등을 집중 공략했다. 

 

하지만 전략은 개뿔...... 결국 그냥 폭식을 하고 말았다. 뷔페는 소위 뽕을 뽑아야 한다는 부담과 최대한 많이 먹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아무리 다짐을 해도 순식간에 이성을 잃고 어처구니없이 많이 먹게 된다. 같이 간 일행과 비교하며 누가 더 많이 먹었고 누가 더 값나가는 음식을 먹었는지 유치하기 짝이 없는 경쟁을 하기도 하고 전이나 잡채, 밥이랑 김치, 국을 들고 오면 실속 없다며 괜히 눈치를 주기도 한다.

 

이날은 꼭 맞는 팬츠에 살짝 달라붙는 니트 상의를 입고 갔는데 먹다 보니 점점 배가 불룩 나오는 게 느껴졌다. 먹다가 갑자기 코트를 입을 수도 없고 그만 먹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앞으로 뷔페에 갈 때는 무조건 루즈핏으로 입고 가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러고 나서 둘러보니 식당에 중년 여성들은 하나같이 허리가 편안한 밴드 형식의 스커트나 품이 넉넉한 원피스 차림이었다. 뷔페 복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나는 점점 불룩해지는 배를 난감해하면서도 꿋꿋하게 식사를 마쳤다. 

 

난생처음 뷔페에 간 것은 88 올림픽이 있던 국민학교 시절, 할아버지의 환갑잔치로 기억한다.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던 원피스를 꺼내 입고 소공녀가 된 기분으로 내 눈앞에 환상적으로 펼쳐진 음식 앞에 섰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차려주는 생일상, 집들이 음식, 큰 집 차례 음식은 봤지만 그렇게 호화로운 요리들은 처음이었다. 정확히 어떤 음식들이 있었고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직접 접시를 들고 음식을 집으며 몹시 설레었던 기억만큼은 생생히 살아있다. 

 

중2 때 미국에 간 이후로는 뷔페를 먹을 기회가 자주 생겼다.  90년대 초까지는 엘에이나 가든그로브 한인 타운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한인 식당이 많지 않았다. 한식이 생각나면 아쉬운 대로 중식으로 대체해야 했는데 그때 당시 중국 뷔페가 꽤나 유행을 했었다. 차우멘, 프라이드 라이스, 게살 수프, 브로콜리 비프, 쿵파오 치킨, 야채 볶음 요리들과 마지막은 포춘 쿠키까지. 메뉴가 다양한 편이라 뭘 먹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가성비도 좋아 큰 부담 없이 자주 찾았던 것 같다. 언제부턴가 중국 뷔페는 점차 자취를 감춰 성인이 된 이후로는 갈 수 없었다. 서비스나 요리 수준을 떠올렸을 때 품격 있는 뷔페는 아니었지만 추억을 담고 있어서 가끔씩 생각이 난다. 

 

중국 뷔페와 쌍벽을 이루는 뷔페로는 홈타운 뷔페가 있었다. 양식이긴 하지만 한인들도 즐겨 찾는 곳으로 가성비가 좋아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었다. 나는 갈 때마다 조개보다 감자가 더 많이 들어간 짭짤한 클램 차우더를 두 번씩 먹었었다. 음식이 전반적으로 너무 짜거나 느끼했는데 이게 이 뷔페식당의 영업 비밀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훌륭한 맛은 아니었지만 홈타운 뷔페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서민들과 영어가 서툴어 식당에서 주문할 때마다 식은땀을 흘려야 하는 소수인종들이 마음 편히 찾을 수 있는 식당이 아니었나 싶다.

 

2-30대가 되어서는 주변의 지인들이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거나 하면서 결혼식, 돌잔치 뷔페 음식을 먹을 일이 연이어졌다. 그때 잔치 음식의 대략 80% 이상이 한식 뷔페였을 것이다. 김치, 나물, 전으로 시작해서 뒤로 갈수록 홍합구이, 새우튀김, 갈비찜, 초밥과 회 순서로 음식들이 등장했다. 30대 후반이 되면서 애석하게도 주변에 결혼식과 돌잔치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젊은 날의 추억만큼 그때 먹던 잔치 음식이 그리워지곤 한다. 

 

나 또한 결혼을 앞두고 구 남친이었던 현 남편과 뷔페 음식을 맛보고 메뉴를 선택하러 다녔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작은 학원 실장으로 일하며 모은 얼마 안 되는 돈으로 결혼을 준비해야 해서 계산기를 수십 번도 더 두들겨야 했고 결혼식에 왜 쓸데없이 돈을 많이 쓰려하냐는 아버지 핀잔에 서운하고 야속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래도 희망이 가득했던 날들이다. 다이어트에 실패해 웨딩드레스가 꽉 꼈지만 나만 바라보는 애인이 곁에 있었고 우리에게는 마치 잔칫날 뷔페 음식처럼 수많은 기회와 선택이 펼쳐져 있었다. 

 

나의 추억 속 중국 뷔페와 홈타운 뷔페, 그리고 우리가 결혼식 음식으로 선택했던 토다이 뷔페 역시 이제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검색 결과 신기하게도 토다이가 국내에서는 영업 중인 것 같다. 며칠 후면 결혼 17주년인데 한 번 방문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물론 또다시 치팅데이를 선언해야 하는 것은 좀 마음에 걸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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