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머무는 곳
12/13/21  

아들은 용인의 한 추모관에 안치되어 있다. "자연을 품고 빛으로 채웠습니다. 최선을 다해 살아오신 소중한 분을 위한 선물. 최고의 명당 더 퍼스트 클래스 봉안당"이라는 홍보 문구가 다소 진부하지만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하고 흡사 5성급 호텔을 떠올릴 정도로 고급스럽고 쾌적하다. 입구에 들어서면 고급 리조트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가 느껴지고 창이 많이 환하게 자연광이 들어오는 데다가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을 것처럼 깨끗하다. 아들은 호텔을 좋아했으니 필시 이곳도 마음에 들어 했을 것 같다. 재작년이었나…... 외할아버지 덕분에 하룻밤 머물렀던 5성급 호텔에서 아들은 꽤나 흡족한 얼굴로 사진을 참 많이 찍었었다.

 

아들의 장례를 치르고 한 달에 한 번은 봉안당을 방문하고 있다. 딱히 날짜를 정해놓은 것은 아니고 더 자주 갈 때도 있고 더 길게 못 간 적도 있지만 보통 3주가 넘어도 가지 않으면 아이들이 먼저 "주말에 형 보러 갈 거야?"하고 묻는다. 우리집 초등학생 세 명은 봉안당 나들이를 특별히 좋아하거나 재미있어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당연히 가야 하는 것으로는 알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내 아들이 봉안함 안에 머문다고는 추호도 생각지 않지만 그래도 가끔 그곳이라도 다녀오는 것이 조금은 위안이 되는 것 같다.

 

아들의 봉안함이 놓인 방에서 아들은 첫 입주자였다. 혼자 너무 외로울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도 들었는데 갈 때마다 봉안함이 하나둘 늘어나더니 이제는 제법 빼곡하게 켜켜이 공간이 채워졌다. 나는 그 방 안에 사람들을 꽤 많이 기억한다. 아들에게 인사를 마치고 매번 관심 있게 둘러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슨 사연일까…...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특히 세상에 태어나 너무 짧은 삶을 살다가 떠난 어린 천사들과 내 나이 또래의 아이 엄마나 아빠들을 보면 어쩌다가 이런 나이에 하늘로 갔을까 가슴이 시려 온다.

 

죽음은 하나같이 슬픔을 품고 있지만 젊은 나이에 갑작스레 삶을 마감한 이의 죽음이 대대손손 곁에 두고 천수를 누리다가 눈을 감은 노인의 죽음과 같을 수는 없다. 적어도 남겨진 가족들에게만큼은 그 슬픔의 빛깔과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다. 아들의 장례식이 있던 날 건너편에서도 다른 장례식이 진행 중이었는데 그쪽에서는 자주 하하호호 크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처럼 만난 친인척들의 왁자지껄한 인사도 훨씬 쾌활하게 들려왔다. 연세 지긋한 어르신의 장례였다. 호상이었던 모양이다. 

 

봉안당에 더 많은 사진과 장식, 자주 바뀌는 꽃들도 이를 증명한다. 아이나 젊은 사람들의 공간은 자주 바뀌고 누군가 자주 다녀간 흔적이 남아있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착용했을 안경과 손목시계, 십자가와 묵주, 이런저런 미니어처와 인형, 꽃과 사진, 편지와 메모들이 가득하다. 미니어처로 만들어진 밥상에는 고인이 평소에 좋아했을 음식들이 가득하다. 그 좁은 한 칸이 그 사람의 인생을 다 이야기해줄 수는 없지만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 것만 같아진다. 그리고 떠나간 이를 향한 남겨진 이들의 애틋한 사랑과 그리움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모든 것이 고인을 그리워하며 고인을 위해 정성껏 준비한 것들이지만 결국 산 자들을 위한 공간이다. 못다 한 사랑과 그리움이다.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가족을 마음껏 그리워하며 통곡할 수 있는 남은 자들의 공간이다. 

 

그렇게 한참 봉안함들을 둘러보고 나면 내게 남겨진 삶이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천년만년 내 곁에 있어줄 수 없고 나도 언제 어떻게 하늘의 부르심을 받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로 미룰 것도 없이 오늘을 잘 살아야 하고 마음껏 사랑하고 아낌없이 나누어야만 한다. 

 

아들이 떠나고 맞이하는 두 번째 겨울이다. 나는 이제 아들을 쓰다듬을 수도 꼭 안아줄 수도 없지만 아들의 존재는 완전히 소멸되지 않고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다. 엄마 모르게 한 뼘 이상 키가 컸을 것만 같고 변성기가 찾아온 목소리는 어느덧 소년티를 벗어가고 있을 것만 같다. 제발 꿈에라도 찾아와 달라고 빌고 또 빌어본다. 겨울에 찾아오는 그리움은 더 차고 시리다. 슬픔과 아픔 없이 그리워하는 날이 오긴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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