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못 끊어
12/19/21  

나에게 SNS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고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이다. 그래서 넘치는 광고와 거짓 뉴스, 상대적 박탈감, 사이버 범죄 노출, 사생활 침해, 시간 낭비 등등 수많은 문제를 인지하면서도 끊지 못하고 매일같이 들여다보고 있다. 제주에 사는 친오빠의 저녁 메뉴, 미국에 사는 30년 지기 친구의 딸 생일 풍경, 만난 적은 없지만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페이스북 친구의 승승장구 소식, 미국에 계신 부모님의 주말 산책 사진을 보고 나면 그들과 아주 가까이에서 일상을 공유하는 기분이 들어서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가끔은 참 짓궂고 모질게 내 마음을 괴롭힌다. 오늘이 그랬다. 포스트 자체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 내 마음이 문제일 뿐...... 큰 아들의 미국 친구들은 올 가을 모두 고등학생이 되었다. 가끔씩 올라오는 사진 속에 아이들은 모두 키가 자기 엄마보다 한 뼘 이상 커졌고 울긋불긋 여드름이 나거나 반항끼 가득한 눈빛을 장착하며 제법 어린이 티를 벗고 청소년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내 아들과 함께 뛰어놀던 그 아이들의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이내 그리움이 사무친다. 분명 함께 뛰어놀며 까르르 웃었고 창창한 앞날이 있었고 함께 커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뿌듯했는데 이제 나의 아들은 없다. 

 

한동안 동네 중학생들 하교 시간에는 밖에 얼씬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들 또래 아이들이 내 아들이 입고 좋아했던 교복을 입고 무리 지어 다니는 모습을 보면 심장이 쿵쾅거리고 눈물이 쏟아지는 탓에 어쩔 수가 없었다. 작년 가을 아들의 이름으로 나무를 심고 돌아오던 길이 그랬다. 하필이면 아들이 다니던 중학교 하교 시간이었는데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해 마스크가 흠뻑 젖어버렸고 습기로 가득 찬 안경은 시야를 가려 제대로 걷기도 힘들었다. 그 이후로는 더욱 그 시간 외출이 꺼려졌다. 

 

하지만 가슴이 저미고 눈물이 나면서도 또 이상하게 유심히 그 아이들을 보게 된다. 무슨 이야기들을 할까? 어떤 말투를 쓰고 있을까?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어떻게 걷고 있을까? 귀를 쫑긋 세우기도 하고 고개가 돌아갈 정도로 열심히 살펴보기도 한다. 겨울이라 동복을 입었구나...... 체육복을 입고 하교하는 날도 있구나...... 오늘은 수업이 일찍 끝났네? 시험 기간인가? 키가 저만하면 중2쯤 되었을까...... 키가 작던 우리 아들도 지금쯤 팍팍 커서 내 키보다 커졌으려나...... 열심히 살피게 된다. 무리 지어 자전거를 타거나 농구하는 아이들도 유심히 보게 된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던 우리 아들은 뭘 했을까...... 남들 다 걸린다는 중2병은 어떻게 지냈을까...... 겪어보지 못하고 오직 상상만 가능하니 그저 궁금할 뿐이라 또래 아이들 속에서 아들을 찾고 그려본다. 

 

나는 아들의 친구 몇 명과 SNS 친구를 맺어 그들의 포스트를 보기도 한다. 포스트가 올라오면 너무 반갑고 가끔은 좋아요도 눌러주고 싶고 댓글도 남기고 싶지만 그나마 맺어진 친구 자격마저 박탈당할까 봐 유령처럼 조용히 숨죽여 보기만 한다. 아이들은 부쩍 커간다. 연애를 하는 아이들도 있고 본인의 소신과 견해도 꽤 견고해지고 무엇보다 언어가 꽤나 거칠어졌다. 그래, 그럴 때다. 비속어와 은어 없이는 소통이 불가능한 그런 시기...... 허세와 반항이 극에 달하고 도전과 무모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 버티는 사춘기, 그 무렵 엄마들이 모두 치를 떨며 힘들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마저도 부러움의 대상일 뿐이다. 

 

딸이 얼마 전에 "엄마, 단 하루만 오빠가 돌아올 수 있다면 엄마는 오빠가 원하는 걸 뭐든 하게 해 줄 거야?"라고 물었다. 암 그렇고 말고 돌아오기만 해 봐. 우리 아들 하고 싶은 거 원 없이 하게 해 주지...... 생각하다가 아니다. 그럼 나는? 단 하루뿐인데...... 내가 아들하고 하고 싶은 것은 어쩌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 하루 종일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단 하루...... 무엇을 해야 할까? 과연 우리 아들은 무엇을 하고 싶어 할까?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인데도 한참을 그렇게 고민해버렸다.  

 

성탄과 연말연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 좋아하던 크리스마스 캐럴도 쓸쓸하게만 들리는 이 겨울, 휴대폰 사진첩 속 아들은 영원히 열세 살이지만 나에게는 사춘기를 향해 커가는 세 명의 아이들이 남아있으니 오늘도 몸을 일으켜 힘을 내본다. 오늘 아침 등교하는 셋째의 패션이 귀여워 사진을 찍었는데 얼른 SNS에 포스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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