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꼰대
12/26/21  

아들이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겠다고 했다. 잘 생각해서 결정한 것인가 물었다. 그렇다고 아들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인가 물으니 그 동안 틈틈이 하던 농구 트레이너 일을 업(業)으로 하겠다고 했다. 돈벌이가 되냐고 물으니 직장 생활할 때와는 비교하기 어렵겠지만 생활할 정도는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아빠는 왜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중요시하지 않고 경제적인 상황부터 따지냐’고 되물었다. 한 마디로 꼰대라는 말이다.

 

요즈음 사람들의 화두는 꼰대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꼰대에 관해 얘기한다. 심지어 꼰대의 정의, 꼰대 진단법,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지침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참 다양하다. 필자도 얼마 전 한 친구가 보내준 꼰대진단법에 시험을 치르듯 진지하게 답을 해봤다. 어떤 테스트에서는 하나만 해당돼도 꼰대라 했고, 여러 문항 중에 3문항 이상 해당되면 꼰대라는 테스트도 있었다. 필자의 경우는 두 가지 모두에서 꼰대가 확실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몇 해 전 영국 BBC가 ‘KKONDAE (꼰대)’를 그날의 단어로 지정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꼰대를 ‘자신이 무조건 옳다고 여기는 나이 든 사람’이라고 정의한 바 있으나 사실 꼰대는 처음부터 그런 의미를 갖고 있지 않았다. 1960년대 처음 신문이나 문학작품에 오르내릴 때만해도 꼰대는 그냥 ‘나이든 어른이나 선생님, 아버지’를 지칭하는 은어, 혹은 속된 표현에 불과했다. 그것이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노인네라는 뜻을 갖게 된 것은 시대의 탓이 크다. 요즈음 통용되는 꼰대의 의미는 기존의 질서를 ‘지키려는’ 윗세대와 이를 ‘부수려는’ 젊은 세대 간의 갈등에 따라 기존의 ‘나이든 어른’에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이 더해져서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나이든 어른’으로 정립된 것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라고 모두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질서를 부수려고만 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질서를 지키려는 젊은이들도 있다. 이는 ‘누구나 꼰대가 될 수 있으며 그 가운데 나이 어린 꼰대도 적지 않다’는 말이다. 즉 누구나 언제든 꼰대가 될 수 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꼰대가 아닌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꼰대가 되기도 하니까 꼰대라는 말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따라 유효한 의미를 지닐 수도, 아닐 수도 있는 단어인 것이다.

 

2022년 대선에 나선 한 야당 후보가 최근 자신이 ‘꼰대’임을 인정했다. 괜히 젊은 척하다가 청년들의 반감을 사느니, 꼰대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진솔한 소통에 도움이 된다고 깨달은 모양이다.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선거전을 펼칠 때 한 상대 후보가 줄곧 ‘꼰대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젊은 층의 호감을 얻는 것을 보고 배운 것이 아닌가 싶다.

 

좌담회 형식의 한 공적인 자리에서 한 질문자가 이 야당 후보에게 “꼰대 이미지가 굉장히 크다고 한다”고 말하자 그는 “인정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꼰대인 걸 아는 꼰대 봤냐?”고 자기는 꼰대가 아니라는 듯이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했다. 이에 질문자가 후보자의 고질병은 마지막에 변명을 붙이는 것이라고 지적하자, “오케이. 아임 꼰대”라며 웃어 넘겼다. 나는 꼰대가 아니라고 발버둥치는 것 자체가 꼰대라고 밝히는 꼴이 된다. 꼰대가 되지 않겠다는 시도 자체를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여당, 야당 모두 2022년 대선은 다른 어느 때보다 2030 세대의 표심이 크게 작용할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그러나 청년세대와 정서적 괴리를 좁히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대선 후보들은 해답을 적극적 소통에서 찾았다. 여당 후보는 머리를 까맣게 물들여서 일단 겉으로 보이는 느낌도 다소 젊어 보이게 했고, 지방 곳곳을 누비며 청년들과 대화의 장을 만들고 있다. 야당 후보는 유튜브 채널에 30대인 당 대표와 동반 출연해 쌍방향 소통에 힘쓰기도 했다. 청년들에게 인기가 많은 대표와 소통이 원활함을 과시하면서 질문에 적극 답하는 등 젊은이들에게 다가서려 애쓰고 있다. 과연 그렇다고 꼰대가 아닐까?

 

이준행 북키닷컴 개발자는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6가지 지침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나이를 묻지 마라, 함부로 호구조사를 하거나 삶에 참견하지 마라, 자랑을 늘어놓지 마라, ‘딸(아들) 같아서 조언하는데’ 같은 말 하지 마라, 나이나 지위로 대우받으려 하지 마라, 스스로가 언제든 꼰대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라.

 

아들이 집에 오는 날은 무엇 하나라도 잘 먹이려고 부산하게 움직인다. 부엌에서 아들에게 줄 음식을 하고 있는데 녀석이 내 엉덩이를 치고 지나간다. 처음 하는 짓은 아니지만 깜짝 놀랐다. 평소보다 매우 세게 가격했기 때문이다. 감정이 실린 듯하다. 회사 퇴직을 말리려는 아빠에게 자기 뜻대로 하겠다고 쐐기를 박으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며칠 뒤 아들은 회사에 사의를 표명했다면서 올해 말까지 일하고 내년부터는 농구 트레이너 일을 한다고 정식으로 통보했다. 필자도 아들이 내린 결정을 존중하고 힘닿는데 까지 협조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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