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1.5세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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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보고서
01/02/22  

지난 9월부터 4개월 동안 평균 만 보 이상을 걷거나 달렸다. 원래 매년 가을이면 여름이나 겨울보다 더 많이 걷기는 했지만 일시적인 현상으로 한 달 이상 꾸준히 지속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8월 중순부터 주 3-4회는 뛰거나 걷는 것으로 만 보 이상을 기록한 것이다. 8월 29일 등산에 입문한 이후에는 기회가 되면 열심히 산에 올랐고 송파 둘레길 21km도 걸었으며 필라테스와 PT도 병행했다.

 

4개월간의 변화는 대략 이렇다. 입이 쩍 벌어질만한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안물안궁(‘안 물어보았고, 안 궁금하다.’를 줄여 이르는 말.) 한 내용이겠지만 나로서는 처음 이룬 쾌거이고 나 같이 운동을 멀리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동기 부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니 공유해 보기로 한다. 

 

첫째, 제일 좋은 점은 잠을 잘 잔다.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았고 자다가 깨면 다시 잠들지 못해 괴로웠다. 잠 못 이루는 어두운 밤에 고독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또 있으랴…... 그런데 운동을(특히 야외에서 하는 등산과 러닝) 시작한 이후로는 과장 좀 보태서 베개에 머리만 닿으면 잠이 들었다. 그리고 숙면 덕분인지 아침에 일어났을 때 피로감이 훨씬 덜하고 하루의 시작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리고 체력이 좋아져서 몸이 덜 지친다. 가정 주부의 경우 좋아진 체력을 어떻게 알 수 있냐 하면 재미있게도 빨래나 청소 같은 집안일이 덜 밀리면 알 수 있다. 평소 나는 고질병인 허리 디스크 때문에 오래 서서 설거지를 하거나 몸을 구부려 세탁기에 빨래를 넣을 때마다 허리가 아파 한숨이 절로 나왔었다. 무거운 택배 박스나 식료품 배달이 오면 들 엄두가 나지 않아 남편이 옮겨줄 때까지 현관에 그대로 두고 버텼었는데 이제는 내가 먼저 번쩍번쩍 들어 옮긴다. 올해 김장할 때도 20kg 배추 세 박스, 무 박스 및 재료들을 내가 혼자 다 들어 날랐다. 다음날 몸살이 올 것 같았으나 웬걸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도봉산에 다녀왔다.

 

가족들이 인정해 줄지는 모르겠으나 내 생각에 짜증과 불평불만도 줄어들었다. 내 몸이 지치고 생각대로 안 따라 줄 때는 세상만사가 다 귀찮고 내가 힘든 이유와 원인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고만 싶어진다. 왜 일은 내가 더 많이 하는 것 같지? 왜 이런 일은 나만 혼자 해야 하나? 늘어놓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나? 체력이 떨어지면 나도 모르게 얼굴에 불평불만이 덕지덕지 붙어 누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짜증이 절로 튀어나왔다. 하지만 체력이 좋아지니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내가 한번 더 움직이면 되고 내가 한번 더 참아주면 되지 하면서 말이다.  

 

마지막으로는 내 자신을 조금은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겨울이 되고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지니 밖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반에 반으로 줄었다. 날씨 좋은 가을에 공원과 한강 주변을 가득 메우던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 갔을까? 추워서 집밖으로 나올 엄두가 나지 않는 걸까? 실외보다는 실내 체육관을 더 많이 찾게 되겠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운동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내가 속해 있다는 사실이 왠지 으쓱하고 기분 좋았다. 나는 운동 신경도 쥐뿔 없고 운동이라면 어떤 종목을 막론하고 다 형편없는 사람이지만 결국 꾸준함은 못 당해내는구나…... 성취감을 느끼니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존중하고 아끼게 되었다. 청계산, 검단산 정상에 오르고도 이렇게 뿌듯하니 사람들이 그 고생을 하면서도 에베레스트에 오르고 마라톤을 달리고 하는 모양이다. 

 

부작용 및 단점은 아래와 같다. 늘어난 야외 활동으로 기미 주근깨가 날로 늘어 세보지는 않았지만 모르긴 몰라도 대략 3천 개쯤 되지 않을까? 피부 노화도 같이 오겠지 싶어서 거울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난다. 그리고 운동복 및 장비 구매로 예상치 못한 지출이 많이 발생했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 살다 보니 철마다 운동복이 달라져야 하고 부부가 운동을 같이 하다 보니 더블로 돈이 들어가서 타격이 좀 컸다. 이제 내 서랍장 첫 칸은 레깅스, 등산복, 기능성 티셔츠와 양말들로 가득 차있다. 

 

가끔 나 때문에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연락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때 느끼는 감사와 기쁨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오지에 가서 전도하는 선교사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내가 운동으로 누군가에게 inspiration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니 눈에 보이는 결과와 상관없이 충분히 만족스럽다. 2021년 나는 머리와 가슴이 아닌 몸을 움직이고 느끼고 살피는 행위가 꽤 재미있다는 사실을 처음 느껴봤다. 그리고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사실이 너무 재미있고 설렌다. 오늘보다 더 건강한 내일을 위해 2022년 새해에도 건강히 먹고 더 많이 움직여야겠다. 새해에는 "운동 후 몰라지게 예뻐져서 큰일이에요." 이런 말도 안 되는 글도 한번 써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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