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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sir, with love
01/18/22  

시드니 포이티어(Sidney Poitier)가 향년 94세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는 우리 한국인들의 기억 속에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는 배우다. 그의 영화들이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영화 속에서 그가 거칠고 막무가내인 백인들에 대항하는 예의 바르고 점잖은 흑인 신사의 모습을 보여줘 감동을 준 것이 아닌가 싶다. 그가 출연한 영화 두 편이 내 기억 속에 있다. 그 중에 '언제나 마음은 태양'이라고 번역되어 한국에 소개되었던 영화, 'To sir with love'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당시 교복을 입고 머리를 빡빡 깎고 다니던 시절에 머리를 기르고 사복을 한 학생들이 교사에게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고 하면서 교사를 골탕 먹이는 장면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한국은 선생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학생들은 모두 퇴학처리 되었을 거다. 영화의 내용은 통신기사인 한 아프리카 출신 흑인이 일자리를 얻기 전에 잠시 기간제 교사가 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공부할 생각이 전혀 없는 백인 학생들은 흑인 교사를 괴롭히며 즐긴다. 학교 당국은 이를 수수방관(袖手傍觀)한다.

 

흑인 교사는 교사의 권위를 버리고 학생들을 성인으로 대우하면서 학생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교과서를 접어두고 인생, 죽음, 결혼, 사랑 등 살면서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면서 학생들과 진정한 대화를 나눈다. 점차 백인 학생들과 흑인 교사는 가까워지고, 학생들은 교사를 신임하고 존경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학생들은 졸업을 앞두게 되고 교사는 통신기사 일자리를 얻는다. 졸업 댄스파티, 세상으로 나갈 준비가 된 학생들은 흑인 교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선생님은 눈물을 흘린다. 요즈음 영화로는 그리 대단한 영화가 아닐지 모르나 당시 우리의 상황에서는 아주 감동을 주는 영화였다.

시드니 포이티어가 활동하던 시대는 흑인차별이 무척 심하던 시기였다. 댄젤 워싱턴, 윌 스미스, 사무엘 L 잭슨, 에디 머피 등 흑인배우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요즈음과 달리 시드니 포이티어는 당시 유일하게 스타자리에 오른 흑인 배우였다. 이런 세태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그가 출연한 영화 대부분은 '인종차별'을 소재로 했다.

 

내 기억 속의 두 번째 영화 'In The Heat of the Night'(밤의 열기 속으로)에서 시드니 포이티어는 살인 수사 중 인종차별에 맞서는 흑인 형사 버질 팁스(Virgil Tibbs) 역을 맡았다. 표면적으로는 경찰수사영화지만 영화 구석구석에서 인종차별을 다루고 있다.

 

미국 남부 미시시피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한 사람이 살해당하고 같은 날 기차를 갈아타려고 기다리던 한 흑인이 용의자로 경찰에 체포된다. 그런데 고급 양복을 입고 지갑에 많은 돈을 가지고 있던 이 흑인은 경찰이었다. 그것도 필라델피아 경찰로 살인사건을 전문으로 다루는 유능한 형사였다.

 

이 영화에는 흑백의 두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 마을의 백인 경찰서장은 흑인 경찰이 영 마음에 안 든다. 흑인 주제에 잘난 척하고, 게다가 자신들이 체포한 용의자를 무죄라고 풀어주라고 한다. 살해당한 사람의 부인은 두 사람에게 사건을 부탁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힘을 합쳐 사건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걸핏하면 대립하고 서로를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마지못해 함께 한다. 다른 경찰관들도 마찬가지다. 그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은 외지에서 온 흑인이 사건을 맡아 백인들을 취조하고 다니는 것 자체를 혐오한다. 흑인을 멸시하는 마을에서 양복을 입고 다니는 흑인에 대한 적대감은 극에 달한다.

 

‘밤의 열기 속에서’는 '존 볼'이라는 작가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수사드라마이자 인종차별 관련 영화이다. 다른 인종문제를 다룬 영화와 다른 점은 백인이 흑인을 차별하여 백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한 흑인에 대한 백인들의 적대감 등 그 당시 남부지방의 사회 분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백인들의 냉랭한 시선과 폭력의 위험을 딛고 사건을 해결한 흑인 형사가 마을을 떠날 때 그토록 대립하고 적대 관계였던 경찰서장은 손수 흑인 형사의 가방을 들고 기차역까지 배웅을 나간다. 마치 앞으로 펼쳐질 시대 변화를 예고라도 하듯이.

 

포이티어는 배우이며, 존경받는 인도주의자이자 외교관이었다. 1963년 'Lilies of the Field'(들판의 백합)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미국과 바하마 복수국적자였던 그는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주일본 바하마 대사를 지냈으며 1974년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포이티어를 “위엄과 우아함의 전형이며 특별한 재능을 지닌 사람으로 우리를 더 가깝게 만드는 영화의 힘과 배우 세대의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포이티어를 기리며 'To sir with love'의 주제곡을 이 영화에 출연했던 루루의 음성으로 들어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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