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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01/24/22  

떠오르는 태양에는 힘이 있다.

일출이나 일몰이나 햇빛으로 붉게 물든 하늘이 아름다운 것은 매한가지이지만 볼 때의 느낌이 분명 다르다. 일몰은 일출과 마찬가지로 아름답지만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좀 더 차분해지고 조금은 쓸쓸하기까지 하다. 찬란하지만 해가 사라진 후 찾아올 어둠과 적막함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개와 늑대의 시간으로 불리는 해가 넘어가는 시간이 유독 싫었다. 그래서 자주 배가 살살 아플 정도로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렸었다. 하지만 이제는 해넘이를 바라보며 놓아줄 것은 놓아주고 비워낼 것은 비워내며 어둠이 오는 시간을 기다릴 줄도 알아가는 중이다. 어둠이 있기에 빛이 존재하고 오늘 지는 태양이 있기에 내일의 태양이 다시 뜨기 때문이다. 

 

새해가 되면 기를 쓰고 해돋이를 보러 가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매일 뜨는 해를 뭐하러 고생해가며 그 사람 많은데 둘러쌓여 봐야 하는 걸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기회가 되면 일출을 놓치지 않고 보려고 하는 편이다. 평소 아침형 인간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크게 힘들지 않기에 나는 여행 중에도 일출을 자주 만난다. 특히 겨울철에는 해가 늦게 나오기 때문에 일출을 만나는 일이 훨씬 수월하다. 여행지에서 아침에 일어나 일출을 만나면 태양이 온몸으로 나를 축복해주는 것만 같아서 기분이 참 좋다. 매일 뜨고 지는 태양이지만 누구에게나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진 않기 때문이다.

 

일출은 일몰과 달리 뭔가 두근거리는 기대감을 만들어 준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 꼭 새해 첫날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매번 새로운 다짐을 해보기도 한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해가 올라오는 풍경을 볼 수가 있다. 도심에서 아파트를 배경으로 바라보는 일출은 산과 바다 위로 솟아오르는 장엄하고 가슴 벅찬 해돋이와는 분명 차이가 있지만 매일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나는 '오늘도 살아있구나'하고 생각한다.

 

일출을 보면 그날이 어떤 하루가 될지 상관없이 일단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새해 첫날 떠오르는 첫 해를 보기 위해 해돋이 여행을 떠나는 이들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아침마다 매일 떠오르는 태양이지만 새해 첫날 벌겋게 떠오르는 그 해를 직접 보며 소원도 빌고 다짐도 해야만 일 년이 무탈할 것만 같은 그 마음을 말이다.

 

나의 첫 일출 구경은 국민학교 2학년 때쯤으로 기억한다. 보이스카웃 지도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중학생들의 캠프에 참여했던 것인데 나는 교사 아버지를 둔 덕분에 꽤 많은 귀여움을 받았었다. 어느 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 일출을 보러 가는 일정이 있었는데 아름다운 풍경은 전혀 기억나지 않고 어찌나 발이 시리던지 발을 동동 구르며 눈물을 찔찔 흘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 이름에 "범"자가 들어가는 아주 모범생 타입의 중학생 오빠가 내 손을 꼭 잡고 안아주었던 기억만 생생하다. 나중에 '내게 아들이 생기면 "범"자 들어가는 이름으로 지어줘야지' 하는 발칙한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주소도 교환하고 엽서도 주고받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얼굴도 이름도 가물가물하다. 

 

붉은 태양이 번져가는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아무리 계속해도 질리지 않을 것만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랑 고백을 하거나 용서를 구하고 미움을 삭히기도 하며 태양이 주는 특별한 감성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일 어김없이 다시 떠오를 태양을 믿기에 우리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견뎌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오늘의 내가 비록 형편없었고 내 삶이 허접했을지라도 반드시 내일이면 새로운 태양이 뜨고 나의 삶도 다시 시작된다. 일출과 일몰을 보고 있으면 태양은 장엄한 의식을 통해 하루를 맞이하고 마무리하는 그 어느 순간도 함부로 보내지 말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듯하다. 오늘도 눈이 시리도록 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하고 있자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태양아, 2022년 새해에도 우리 열심히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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