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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숨 쉬고 한 발짝만 걸으면
01/31/22  

지난 1월 21일 틱낫한 스님이 베트남 중부 후에에 있는 뚜 하에우 사원에서 법랍 80년, 세수 96세를 일기로 열반했다.

 

틱낫한 스님과 필자의 인연은 2004년 어느 봄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스콘디도 녹야원(鹿野苑, Deer Park Monastery)의 그리 크지 않은 방에 스님은 벽을 뒤로 하고 방문을 향해 중앙에 앉고 다른 두 스님이 좌우에 앉아 있었다. 나와 친구는 스님들을 마주 보고 앉았다. 다른 두 스님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엷은 미소만 띠고 있었다.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한 시간 반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우리가 묻고 스님이 답변하는 형식이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초지일관 평화로운 세상 만들기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온 그의 삶에 관해 얘기했고, 온 세계와 인류, 우주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무엇보다도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검고 주름이 많은 얼굴 속에서 반짝이는 그의 두 눈이다. 사색의 깊이가 느껴지는 눈이었다. 그 눈빛과 온화한 말씀에 의해 만들어진 따스한 기운이 봄바람에 실려 오는 꽃향기와 어울려 방안의 모든 이들에게서 환한 웃음이 떠나지 않았었다.

 

이렇게 시작한 인연은 2006년 9월, 녹야원에서 4박 5일의 피정(避靜, Retreat)으로 이어졌다. 피정의 대부분은 수행자가 명상과 호흡을 스스로 즐기도록 짜여 있었다. 수료식에서 스님들은 내게 'Giant Soul of the Heart'라는 불교식 이름을 선사했다. 피정을 마치고 보름쯤 지나서 틱낫한 스님을 또 만났다. 역시 에스콘디도 녹야원에서였다. 이번에는 대중들과 함께 걸으며 명상하고 그가 2시간 정도 대중들에게 설법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스님과 만난 것은 이 두 번이 전부였으나 그의 저서들을 통해 그와의 만남을 계속 이어왔다. 비록 얼굴을 마주 대하지는 않더라도 책을 읽다보면 그와 마주 했던 그 따스한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가 쓴 저서들은 프랑스와 미국에 그가 세운 Plum Village, Deer Park 등에 관한 이야기,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인류에 대한 문제, 그리고 우리들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 많은 이야기들의 결론은 하나다. 세계 평화는 우리들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며, 정성스럽게 호흡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며 묵상하다보면 우리들 마음에 평화와 기쁨이 가득 차게 되며, 대지에도 평화와 기쁨을 심게 된다. 대지는 우리의 어머니이고 우리는 대지의 자녀들이다. 우리는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받고 우리는 대지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들 모두가 진지한 마음으로 밝고 기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생활하다보면 이 세상에는 저절로 평화가 올 것이다. 아주 쉽고 간단한 이야기이다.

 

2014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혼자 생활할 수 없게 된 스님은 2018년 자신이 출가했던 뚜 하에우 사원으로 돌아갔다. 말을 못하고 거동이 불편했지만 스님은 2019년 봄,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집입니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동안 스님이 써놓았던 글들을 주제와 시기 별로 모아서 엮은 것으로 일대기라고도 할 수 있는 자전 수필집이다. ‘베트남에서의 삶’으로 시작해 ‘전쟁과 망명’으로 이어지고 프랑스에서의 삶을 이야기하는 ‘꽃피는 자두마을’, '세상의 고향집에서’를 거쳐 ‘나는 이르렀다’에서 끝맺는다.

 

스님은 ‘진정한 내 집’을 찾지 못하고 헤매 다녔다고 고백한다. “내가 나의 고향집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고국이 없기 때문이었다. 어느 한 나라에 속하지 않았기에 나는 정진(精進)을 거듭하여 마침내 참된 고향집을 찾을 수 있었다. 자기가 아무 데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고 어느 나라에도 적(籍)이 없다는, 바로 이 느낌이 우리의 참 고향집을 찾는데 반드시 필요한 정진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스님은 자신의 생각을 생각 속에 가둬두지 않고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며 살았다. 참 스님이며, 진정한 철인(哲人)이요, 도인(道人)이며 실천가였다. 스님이면서도 그는 종교나 이념, 사상을 고집하지 않고 생활 속에서의 실천을 중요시 했다. 종교를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면 독단에 빠질 수 있다. 학습을 통해서 습득한 지식이나 깨달음을 통해 얻어진 지혜를 현실에 맞춰 적용하고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

 

스님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로 나뉘어 싸우는 양 진영을 향해 싸움을 중단할 것을 주장했고 결국 양쪽으로부터 모두 축출 대상이 되어 조국을 떠나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고국을 떠나서 그는 평생 전쟁 없는 세상, 평화의 세상을 만드는 일에 앞장섰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건강하고 바르게 살 수 있는가를 설파했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서 세계적 불교 지도자, 평화주의자, 인권운동가, 세계4대 생불(生佛)이라고 떠받든다. 그러나 스님은 자신을 따르는 대중들에게 말하고 있다. ‘누구나 한 번 숨 쉬고 한 발짝만 걸으면 단 몇 초 만에 부처가 될 수 있는데 누가 누구를 존경하고 추앙한단 말인가’

 

틱낫한 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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