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글쓰기
02/07/22  

처음 칼럼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적어도 글의 마무리에는 뭔가 커다란 감동과 교훈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다못해 단순한 메시지 하나라도 전달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억지로 뭔가 훈훈하고 밝고 희망적인 결말을 만들어 내느라 늘 골머리를 썼다. 그래서 시작은 술술 써내려 가다가도 마지막 문단에서 항상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글을 쓰면 쓸수록 어려웠다. 나는 법정 스님처럼 인생사 득도한 것 같은 아우라를 뿜어낼 수도 없었고 피천득 작가나 이해인 수녀님처럼 간결한 글귀에 큰 뜻을 품을 수 있는 필력도 없었다. 시시껄렁한 소재만으로도 맛깔난 글을 쓰고 싶었지만 나는 본인이 소유한 티셔츠 이야기로만 책 한 권을 펴내는 무라카미 하루키 발톱만큼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나의 글은 흡입력이 부족하고 깊이도 없고 어휘도 제한적이고 견해와 통찰도 얄팍하고 주장이나 설득력도 애매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으면 초조하고 불안했다. 칼럼은 나 혼자 아무렇게나 써 내려가는 일기가 아니다. 감탄할 만한 필력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내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정확해야 하고 또 그에 맞게 설득력을 갖춰야 하고 그 안에 감동과 위트도 적당히 가미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안 되니 점차 글쓰기가 어려워졌다. 나는 글쓰기를 체계적으로 배운 적도 없고 제대로 평가받은 적도 없었다. 그저 학창 시절에 남들 다 받는 독후감이나 글짓기 상장이 전부였고 글 쓰는 걸 좋아한다고 믿는 바람에 쉬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었고 운이 좋아서 내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블로그나 페이스북이 없던 옛날, Daum 칼럼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가 기억난다. 내가 쓴 글을 그렇게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도록 공개하는 플랫폼은 그때가 처음이었고 나는 설레다 못해 굉장히 격앙되어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댓글을 남기는 것이 어찌나 신이 나던지 난생처음 느껴보는 쾌감에 글을 쓰는 것이 참으로 즐거웠다. 쓸 이야기도 무궁무진했다. 굶주려 있던 사람처럼 컴퓨터 앞에 앉으면 봇물 터진 듯 쉴 새 없이 키보드를 두들겼고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나는 20대였고 글을 잘 써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재미있고 흥미롭게 써서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그땐 20대였으니 글솜씨가 미흡해도 손가락질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고 그렇게 20년 동안 여러 개의 플랫폼을 거쳐 글을 쓰다 보니 글쓰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내가 쓴 글들을 다른 사람의 글들과 비교하며 나 자신을 깎아내리고 내 글이 나의 민낯이라도 되는 냥 부끄러워 주눅이 들었고 내가 쓴 글들을 읽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매주 칼럼 하나씩 쓰는 것이 나의 일이고 약속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글쓰기를 포기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주로 그냥 내 이야기만 주야장천 하고 있다. 내 글을 읽다가 마지막쯤 가서 '뭐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결론이 뭔데?' 하고 의아한 적이 있다면 그게 맞다. 내 글에는 그런 뒷심이 부족하다. 그냥 평범한 어떤 날 걸려온 딸의 안부 전화, 허구한 날 만나고 통화하는 절친이 들려주는 사사로운 이야기, 어느 날 동생이 울면서 써 내려간 편지 정도라고 생각하면 딱 적당하다. 

 

어쩌면 내 그릇은 여기까지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은 글쓰기에 대한 부담과 욕심도 내려놓고 있는데 너무 내려놓아서 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여전히 시원치 않은 글재주지만 나는 매주 뭔가를 쓰고 있다. 그리고 이 미약한 글로나마 내가 누군가와 연결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나는 그냥 처음 내가 나를 소개했을 때처럼 1.5세 아줌마, 엄마, 아내, 딸이고 며느리인 내 이야기를 쓸 뿐이고 그 안에서 작은 공감, 옅은 미소 정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 물론 그 정도로 안주해서는 안된다고 따끔한 질타를 날리신다면 겸허히 받아들이고 조금 더 노력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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