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23주년
04/23/18  

젊은 동양계 정치인들의 모임에 초대받았다. 혈통이 한국, 중국, 태국, 월남이라고 여겨지는 젊은이들이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음식이 나오자 각자 먹을 만큼 덜어서 먹고 마셨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는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젊음은 아름답다.

 


어느 정도 시장기가 가실 때쯤 70대의 한 노 정치인이 자신의 꿈과 실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변호사이기도 한 그는 대학시절부터 평생을 정치판에서 살아왔기에 젊은 정치지망생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고충과 희망을 함께 나누며 이야기할 줄 안다. 그들을 웃기기도 하고 심각하게도 만들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하나의 선으로 이어 이야기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한국 사는 친구로부터 카톡 메시지가 왔다. 어제 네가 미국으로 이주한 지 23년이 되는 날이었다며 삼결살이라도 구워 먹었냐고 물었다. 한국은 어제가 3월 3일이며 삼결살데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세월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고등학생이었던 아들과 중학교에 다니던 딸은 어느새 아이가 딸린 아빠와 엄마가 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다섯 손주를 안겨 주었다. 미국에서 낳은 셋째와 넷째는 대학에 다니고 있다.

 

 

미국에 와서 참 많은 일들을 했다. 처음 일은 가드닝 비즈니스였다. 정원 일은 멕시코인 둘이 하고 필자는 손님들을 관리하고 매월 청구서를 보내는 일을 했다. 그러다보니 시간의 여유가 있어 비디오 가게를 인수해 가드닝과 병행했다. 비디오 가게도 10시에 문을 열고 오후 2시에 아르바이트 학생이 오면 특별하게 할 일이 없어 가데나와 아나하임 두 곳에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방과 후에 영어나 수학을 공부하는 학원을 오픈했다. 선생님들을 고용해 학생 지도를 맡겼다. 하지만 일 년도 못 돼 한 곳은 문을 닫았고 다른 하나는 싼 값에 팔았다.

 

 

가드닝 비즈니스도 정확하게 일 년 만에 좋은 값을 받고 팔았다. 이후 비디오 홀 세일 업체를 인수해 비디오 가게와 같이 운영하다가 1999년 모두 팔았다. 이때 받은 돈으로 조금 더 큰 사업을 해볼까 하고 여기 저기 알아보고 다녔지만 여러 조건들이 맞지 않아 결국 포기하고, LA에서 5년여 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2004년부터 지금까지 타운뉴스 발행인으로 일하고 있다. 미국 생활 23년이 앞에 적은 몇 줄을 읽는 시간만큼이나 빠르게 지나갔다.

 

 

동양인 최초의 미국 이민자들은 중국인들이다. 1848년~1855년까지 이어진 캘리포니아 골드러시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일확천금을 꿈꾸며 샌프란시스코로 입국한 중국인들은 약 20,000여 명에 이른다. 우리 한국 사람들의 미국 이민 역사도 100년이 넘었다. 한인들의 미국 이민은 1903년 1월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의 계약노동자로부터 시작됐다.

 

 

동양인들이 미국 역사의 한 부분을 쓰기 시작한 것은 어림잡아도 160년 이상이 된다. 그리고 현재 미국 역사의 일정 부분은 우리 동양인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동양인들은 이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미국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도 동양인들이 일정 부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향후 동양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어떤 선거에서도 승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도 주류사회가 동양인 특유의 응집력과 추진력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제 동양인들도 비주류라는 말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선조 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왔든, 나로부터 이민이 시작됐든 미국 사회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동안은 적극적으로 미국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미국인으로서 자신과 미국 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모두 주류여야 한다.

 

 

노 정객은 외치고 있었다. 이제 동양계 젊은이들이 정치에 참여해서 미국의 발전에 기여할 때라고. 그는 미국인이다. 캘리포니아의 정치인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의 미래를 함께 짊어진 젊은 동양계 정치인들을 향해 역설했다. 용기를 갖고 힘차게 뛰어 가자고.

 

 

몇 해 전부터 필자도 라미라다시의 시정에 참여해 왔다. 말이 서툴고 어색하지만 당당하게 제 목소리를 내며 살았다. 앞으로 내 발자국 위에 발을 올릴지도 모를 한인 젊은이들이 부끄러워하지 않을 길을 만들어 가겠다.

 

 

미국 이민 23주년을 자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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