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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정신
02/21/22  

제목을 보고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올림픽 정신을 운운하냐고 고개를 젓거나 코웃음 치는 분들이 적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올림픽 대회에서 올림픽 정신을 운운하지 않으면 어디서 얘기 하냐고 반문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참가 그 자체에 목적과 의의를 둔다는 올림픽 정신에 따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공식적으로 국가 간 메달 획득 수로 순위 매기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올림픽이 스포츠를 통해 국가와 국가 간의 국력을 겨루는 싸움터로 변질되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애국과 단합심을 앞세워 선수들에게 금지약물을 복용시키면서까지 순위 경쟁에서 앞서려 하기도 한다. 일례로 러시아는 2019년 9월 국가 주도 도핑 스캔들에 휘말려 2020년 12월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로부터 2년간 올림픽·월드컵 등 주요 국제대회 출전 금지라는 제재를 받았다. 다만 징계 범위가 국가 자격으로 제한돼 선수들은 국가 이름인 대신 ‘ROC(러시아올림픽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자국 국기 대신 올림픽기를 사용하면서 지난해 도쿄 하계올림픽과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징 올림픽에서 러시아 피겨 스케이팅 스타인 15세의 발리예바가 또 도핑 논란에 휩싸이며 다시 한 번 올림픽을 약물로 얼룩지게 했다.

 

이런 모든 문제는 올림픽을 유치하려는 국가들이 유치 활동을 할 때부터 시작된다. 올림픽 유치가 국력을 과시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보니 올림픽을 유치하려는 국가는 각종 방법을 동원해 대회 유치에 안간힘을 쓴다. 유치 신청 후 대회 개최 가능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 자국을 방문하는 IOC 관련 인사에 대해 국가원수까지 나서 극진하게 대우하는 것은 관행이 된지 이미 오래다. 또 그들에게 각종 로비활동을 벌이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IOC는 이런 현실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다.

 

올림픽을 정권이나 이념의 선전장으로 이용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나치의 이미지 세탁용이었고,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에는 대회 개최국과 이념이 다른 국가들이 대거 불참하면서 반쪽짜리 올림픽이 열리기도 했다.

팬데믹으로 2021년에 개최된 ‘2020 도쿄 올림픽’도 마찬가지다. 당시 일본 정부는 '부흥 올림픽'이라 선전하며 유치 순간부터 공을 들였으며, 지도에 공공연하게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하는 등 올림픽 무대를 자국의 선전장으로 활용했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 선수들은 마오쩌뚱 배지를 달고 나오는 등 올림픽을 정치의 장으로 만드는 일들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OC는 사실상 방관하는 태도를 보였다. 전두환 정권 하에서 추진된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도 국민들의 눈을 정치로부터 돌리기 위한 술책의 일환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도 대회 개최 전부터 이념 문제로 잡음이 일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의 영향으로 미국의 정상이 개막식 참석여부를 두고 설전을 벌였으며, 결국 대부분의 서방국가 정상들은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이념 문제는 막상 올림픽이 열리고 나면 경기 승패와 메달 경쟁에 묻히게 된다. 많은 나라들이 자국 선수들의 경기에서의 투혼과 메달 획득 결과를 자국 우월의 결과로 포장한다. 이 때문에 올림픽 개최국 선수들에게는 암암리에 어드벤티지가 제공되고, 개최국 선수들의 승리를 위해 설사 심판들이 편파적으로 혹은 고의적으로 잘못된 판정을 내려도 승리를 놓친 선수와 그 나라 국민들은 가슴을 치며 억울해할 뿐, 판정을 되돌리지 못한다. 비록 판정이 억울하다고 국제심판위원회에 제소하더라도 결과가 뒤집히는 경우는 없다.

이런 모든 것을 감안한다 해도 이번 베이징 올림픽은 오로지 중국이 중국을 위해 중국에서 개최한 스포츠 대회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들이 베이징 올림픽에서 심판들의 편파판정, 잘못된 판정으로 억울함을 겪어야 했다. 이는 모두 올림픽을 통해 자국이 패권국가라는 것을 자국 국민들은 물론 전 세계인에게 주지시키려는 중국 당국의 철저한 계산 아래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더 우려할 만한 것은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이처럼 중국이 일으킨 바람의 방향대로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이 패권을 잡고 세계를 제멋대로 좌지우지 하는 날이 멀지 않았다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런 날이 오지 않도록 온 세계가 힘을 합쳐야 할 것이다.

 

말 많고 탈 많은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그 막을 내렸다. 올림픽 정신이 훼손된 대회였다고 하지만 그 정신이 아주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다. 아니 절대로 사라질 수 없다. 얼음 밑에서도 물이 흐르고, 봄이 오면 폭포수가 되는 것처럼, 숭고한 올림픽 정신은 올림픽 성화처럼 다시 활활 불을 밝힐 것이다.

 

피땀 흘려 기량을 키우고 체력을 단련하여 나라를 대표해 올림픽에 출전한 모든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메달을 받았건 받지 못했건 높고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한 선수들 모두의 앞날에 더 큰 영광이 함께 하길 기원한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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