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터니 5년 차
02/28/22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살이를 한지 벌써 5년 차가 되어간다. 서울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왜 왔냐"와 "언제 돌아갈 거냐"였다. 남들은 어떻게 해서든 해외로 나가려고 하는데 왜 돌아왔는지 의아해했고 결국 언젠가는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물으면 자동응답기처럼 남편 직장 때문에 왔고 직장을 다니는 한 계속 머물 것 같다고 별생각 없이 답하긴 했지만 정작 5년이 이렇게 빨리 흘러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한국 생활에 적응해가던 초창기 우리 가족에게는 많은 예외와 배려가 따라왔었다. 아이들이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하고 단어 사용이 적절치 못해도, 시험 점수가 형편없이 나와도 "미국에서 왔으니깐", "한국어가 서투니깐"하며 넘어갔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저것 서툴고 잘 몰라도 주변에서 "미국에서 왔으니깐 그럴 수 있지." 하며 흔쾌히 이해해줬고 나도 그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핑계를 댈 수 없게 되었다. 원래 한국 태생인 나에게 지난 5년은 충분히 다시 적응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었고 아이들 역시 그들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한국에서 보내고 있는 셈이니 양심 없이 "미국인"카드를 들이밀 수 없게 되었다.  

 

나도 이제 제법 한국사람이 다 되었다. 근처 맛집을 통달하게 되었고 제품군에 따라 다양한 쇼핑앱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고 넉살 좋게 택시 기사님들이나 장사하는 사장님들과 대화를 주고받고 서슴지 않고 언니, 사장님, 선생님, 어르신 같은 호칭이 입에서 튀어나오게 되었다. 머릿속에 입력되지 않아 애먹었던 지역명이나 도로명도 훨씬 익숙해졌고 배달과 택배 문화는 물론 명절, 제철음식까지 챙길 수 있게 되었다. 

 

능수능란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걷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서울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족저근막염에 걸렸던 일이 생각난다. 그 이름이 너무 생소하여 검색해봤더니 주로 축구선수 같은 운동선수들이 잘 걸리는 병이라는데 나는 집 앞을 조금 걸어 다녔다고 금세 족저근막염에 걸리고 만 것이다. 미국에서는 좀처럼 걷는 일이 없었는데 한국에 오니 동네에서는 웬만하면 걸어 다녀야 했다. 아이들 학교, 은행, 병원 등 하루에 몇 군데만 다녀와도 금세 만 보가 넘었다. 발을 디디기 힘들 정도의 통증으로 결국 두 차례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었는데 이제는 만 보 아니라 이만 보, 삼만 보를 걸어 다녀도 멀쩡하다. 이젠 어디든 다 걸어갈 수 있을뿐더러 심지어 그 누구보다 빨리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사람과 장애물에 부딪히지 않으며 빨리 걷는 법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꽤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의 고향이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양팔 벌려 환영해주지 않아도 나는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 반갑고 기뻤다. 속마음을 털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친구도 몇 생겼고 위급할 때 도움을 청할 가족 같은 지인들도 곁에 두게 되었다. 그동안 내게 닥친 수많은 일들이 전부 내 예상이나 계획에 맞춰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나는 또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할아버지 살아계실 때 미국에 오래 머무시면 한국에 가고 싶어 하시고 한국에 계시다 보면 다시 미국에 오시겠다 하셨는데 이제는 그 느낌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면…... 글쎄…... 세월아 네월아 느려 터진 캐쉬어를 기다리다가 울화통이 터질지도 모르고 말도 못 하게 비싼 의료보험과 낙후된 의료시설에 한숨이 날지도 모르겠다. 패스트푸드 버금가는 학교 급식이 못마땅하고 학원 셔틀이 없어서 아이들 기사 노릇하느라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도 길어질 것이다. 그래도 캘리포니아에 사는 가족과 친구들이 SNS에 파아란 하늘 사진을 올리면 당장이라도 비행기를 타고 싶다는 충동이 솟구치니 나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살고 싶다는 소망이 스멀스멀 자리 잡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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