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개학이 반갑다
03/07/22  

한국에 돌아온 이후로 매년 3월이면 본격적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것 같다. 3월부터 아이들 새 학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드디어 기나긴 방학이 끝나고 개학이다. 겨울방학에 봄방학에 길어도 너무 길었다. 아이들은 새 학년 교과서를 꺼내 책가방을 챙기고 실내화를 닦고 개학날 입을 옷을 골랐다. 새 학년 새 학기라고 새로 사준 것은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새 기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도 꽤 들떠 있었지만 내 가슴이 3배쯤 더 설렜다. 개학이라니! 나도 해방이구나!

 

매년 학교가 개학하는 시기에 맞춰 독감 유행이 시작된다. 한국에서 맞이하는 첫 독감 유행 시즌에 우리 아이들은 국가에서 무료로 제공해주는 독감 백신을 접종했음에도 독감에 걸렸다. 처음에는 A형 독감에 걸리더니 얼마 후에는 B형 독감까지 걸렸다. 독감은 일반 감기와 달라서 해열제를 먹어도 열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아이가 기력이 없어서 아무데서나 쓰러져 잠이 들거나 입맛이 없어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 엄마는 그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애가 타들어간다. 방심하기 딱 좋은 꽃샘추위에 밤낮으로 확 변하는 일교차, 그리고 갑자기 늘어난 집단생활에 각종 전염병이 폭증하는 이 시기가 되면 엄마들은 본능적으로 긴장할 수밖에 없다. 

 

올해도 상황이 좋지 못하다. 독감 유행 소식은 아직 잠잠하고 코로나19가 엄청난 기승세를 보이고 있다. 아니 거의 혼란의 도가니 수준이다. 확진, 자가격리 등으로 등교하지 못하는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생겨났고 신속항원 검사 키트가 분배되며 학생과 학교의 책임이 가중되었다. 이제 학생들도 회사원들처럼 자가 키트로 검사 후 음성 결과가 확인되면 등교하는 시스템이다. 혹자들은 이런 위험한 시기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와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지만 지난 2년 넘게 실시해온 거리두기 영업규제나 원격수업에 폐해도 절대 가볍지 않을 것이다. 

 

최근 한두 달 사이에 지인들마저 확진을 피해 가지 못하는 것을 보며 위험을 현실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딸아이가 이틀 전 놀이터에서 함께 놀았던 친구의 확진 소식, 내가 사흘 전 마주 보며 동네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셨던 친구의 확진 소식을 들었을 때는 갑자기 목구멍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열감이 있는 것 같아서 하루에도 수차례 체온을 체크했고 집에서 자가진단 키트로 검사도 계속했다. 체온은 정상이고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아직은 아니지만 언제 누가 걸리더라도 이상할 게 없을 시점까지 온 것 같다. 하루 확진자가 이십만 명이 넘게 나오고 있다. 이제 우리 주변에도 확진자가 속속 생겨나고 있어서 우리 식구 중 누군가가 전염병에 걸려 오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 같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마스크를 열심히 쓰는 것과 생각날 때마다 손을 닦는 것이고 이것을 아이들에게도 누누이 당부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내 주변에 확진된 사람들도 백신 접종을 다 완료했고 마스크도 위생 관리도 나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만 안 했을 리 없는 사람들이라...... 그나마 확진된 지인들의 증상이 대부분 경증이라 질병에 대한 과도한 공포와 두려움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매일 코로나 확진자는 역대 최다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지만 나에겐 새해 같은 3월이 왔고 봄도 오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코로나 시국이라지만 나는 개학이 반갑다. 어찌 되었든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갔고 나는 돌밥돌밥에서 조금 자유로워졌다. 방학 동안 뭐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준 적은 없지만 그래도 매일 세끼 챙기느라 수고했다. 잠시 기뻐해도 괜찮다. 두근두근 새 학년 새 학기가 설레는 것은 비단 아이들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점심은 나 혼자 조용히 먹는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어느새 입꼬리가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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