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1.5세 아줌마
홈으로 나는야 1.5세 아줌마
셋째는 태릉인
03/14/22  

우리 집 셋째는 전교에서 키가 제일 작다. 학교에서 키 순서를 알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오며 가며 딱 봐도 그렇다. 올해 5학년이 되었지만 2, 3학년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 가장 이질감이 없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밥을 잘 안 먹나요?" 그렇지 않다. 주변 친구들도 인정할 정도로 고봉밥을 먹는다. "잠을 안 자나요?" 우리 아이들은 영유아 때부터 지금까지 늘 9시 취침을 지키고 있다. 유치원 때까지는 낮잠도 꼬박꼬박 재웠다. "그럼 편식 심하죠?" 셋째는 오이와 파프리카를 간식처럼 꺼내 먹는 아이다. 내가 손질해주지 않으면 본인이 알아서 챙길 정도로 좋아한다. 육류도 형제들 중 제일 많이 먹고 멸치볶음, 콩자반 같은 영양가 높은 건강식 반찬을 즐긴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우유, 감자, 토마토를 제외하고는 모두 잘 먹는 편이다.

 

그런데도 작으니 원통할 노릇이다. 셋째가 2학년 때 이 분야 전문의를 만났는데 엑스레이로 뼈 나이를 측정하더니 4세 반 수준이라고 했다. 의사는 성장 주사를 권했고 평균 신장 대비 하위 3%라 의료 보험 적용도 가능하다고 했다. 셋째가 작아서 겪는 서러움이 하나둘이 아니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지만 지금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아이에게 매일 호르몬 주사를 찔러댈 자신은 없었다.  

 

그리고 이제 5학년이 된 아이는 여전히 많이 작지만 잘 먹고 잘 자고 잘 논다. 정말 신통방통한 것은 이 녀석이 스포츠를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제 형과 누나는 워낙 스포츠에 소질도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셋째도 필시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 아이는 달랐다. 

 

요즘 셋째의 스케줄을 보면 거의 태릉인 저리 가라 수준이다. 일단 5년째 매일 태권도를 수련 중이고 화·목은 수영이다. 수영은 2학년에 시작했는데 제일 수심이 얕은 곳에서도 까치발을 들고 겨우 서있던 녀석이 이제 제법 수영다운 수영을 하는 것 같다. 보고 있으면 대견해 죽겠다. 수요일은 탁구와 축구. 탁구는 학교 방과 후 수업으로 매번 등록해서 하고 있는데 재미있는지 계속하겠다고 한다. 축구는 최근 새로 추가된 종목인데 친구 따라 몇 번 축구를 해보더니 자기도 축구 배우게 해달라고 사정사정을 해서 결국 보내줬다. 요즘에는 축구하러 가는 수요일만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금요일에는 인라인 스케이트 강습, 주말에는 거의 매주 친구네 가족을 따라 농구도 하고 있다. 이러니 어찌 신통방통 하지 않을 수 있으랴.

 

나는 어렸을 때 공부 잘하는 친구보다 운동 잘하는 친구가 최고로 부러웠다. 나는 발야구하면 공차는 족족 무조건 파울 아니면 아웃, 피구 하면 비명만 지르다가 끝나고, 뜀틀은 2단도 넘어본 적이 없었다. 거의 전신운동급으로 심폐 지구력, 순발력, 점프력까지 겸비해야 잘하는 고무줄놀이도 노래만 가장 크게 불렀고 실력은 형편없었다. 점프하듯 뛰어올라 리듬감 있게 춤추듯 고무줄을 갖고 노는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자전거도 탈 줄 몰랐고 롤러스케이트도 질질 끌고 다니는 수준이었고 아이스 스케이트장에 가도 벽 짚고 한두 바퀴 돌고는 벤치에 앉아 수다만 길게 떨었다. 고등학교 이후부터는 남들 매년 겨울마다 스키 캠프 갈 때 나는 따라가서 스키는 안 타고 산장에서 놀기만 하다가 집에 돌아오곤 했다. 운동은 내게 미지의 세계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 내 아들이 운동을 좋아한다는 게 얼마나 신통방통, 신기방기 한지 모르겠다. 물론 운동 실력이 남달리 뛰어나고 뭐 그런 것까지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히 대견하다. 남들은 영어, 수학 학원 다니느라 다른 사교육은 다 그만두는 판국에 우리 애는 운동만 하나씩 추가되더니 현재 정기적으로 강습 받는 것만 다섯 개가 되었다. 걱정이 있다면 가뜩이나 말랐는데 운동 많이 해서 살이 더 빠지면 어쩌나 하는 건데 그래도 아이가 좋아하니 하는 데까지는 해보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마음 같아서는 우리 셋째가 쑥쑥 잘 커줘서 키 작다고 무시하고 깔본 친구들을 다시 만났을 때 꼭 내려다보며 인사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엄마는 그때까지 그저 잘 먹이고 잘 재우며 응원해주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부디 그것들이 그 어떤 성장주사보다 뛰어난 효능을 발휘하길 빌며.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