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 예찬
03/21/22  

지난해 가을, 타운뉴스 앞뜰에 자동차가 진입하여 잘 자라던 알로에 두 그루와 국화 한 그루를 무참히 짓밟아 버렸다. 앞뜰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던 담장도 무너지고 잔디도 상당 부분 훼손된 사고였다. 담장 수리를 끝내자마자 화단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노란 꽃을 피워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녀석들이 다 시들고 잎과 줄기에 작은 벌레가 하얗게 앉아 볼품없던 유채(혹은 갓)들을 모두 뽑아 버렸다. 장미와 국화 등의 시든 꽃과 누렇게 변색된 잎도 따주었다. 빈 공간에 무엇을 심을까 고민하다가 겨울에 피는 동백이 보고 싶어 동백나무를 심기로 했다. Home Depot에서 동백을 사다 심었다. 처음에 한 그루만 사다 심었는데 외로워 보여 다음날 한 그루를 더 사다 심었다.
 
열심히 물을 주고 출퇴근 할 때마다 돌보기 시작했다. 한 달포 정도 지나 사올 때 두 개의 꽃망울이 있던 나무에서 꽃을 피웠다. 두툼한 꽃잎들을 넓게 옆으로 펼치고 가운데 노란 꽃술들을 삐쭉 내민 빨간 동백꽃이었다. 아침마다 동백꽃을 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꽃이 바닥에 떨어졌다. 동백꽃은 꽃이 질 때, 꽃잎이 한 장씩 떨어지지 않고 꽃 전체가 한꺼번에 떨어진다.
 
대부분의 꽃들은 시든 후에도 가지에 매달려 있다. 벌, 나비가 찾던 아름답고 화려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가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동백은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꽃으로 소임을 다하면 꽃잎을 통째로 떨어뜨린다. 그 모습을 보노라면 구차하게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 임무를 완수하고 생을 마감하는 애국투사의 기개, 소임을 다 하고 산화한 장수의 기백이 느껴진다.
 
동백나무는 늘 푸른잎을 자랑하며, 주위의 다른 나무들이 활동을 멈추고 겨울채비에 여념이 없는 늦가을부터 조금씩 꽃망울을 만들어 간다. 차츰 겨울이 깊어가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둘씩 꽃 피우기 시작하여 봄이 끝날 때까지 계속한다. 그래서 이름도 동백(冬柏)이다. 윤기 나는 진 초록빛 잎사귀에 붉은 꽃은 색채 그 자체로도 환상적이다.
 
동백은 왜 하필 꽃 피우기 좋은 계절을 피해 한겨울에 꽃을 피우는 것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따뜻한 남쪽 지방이기에 가능했으리라.
 
본래 동백나무는 외톨이로 자라기보다 여럿이 모여 숲을 이룬다. 광양 옥룡사지, 고창 선운사, 강진 백련사, 장흥 천관산 지역이 동백 숲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모두 남서해안에 위치한 지역이다. 특히 여수 오동도의 동백 숲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오동도에는 동백과 관련한 전설이 전해져오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금슬 좋은 젊은 부부가 섬에 살고 있었다. 부인은 뭇 남성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고기잡이 나간 사이에 한 남자가 몰래 숨어 들어와 부인을 범하려고 달려들었다. 부인은 남편이 있는 바다를 향해 도망가다 절벽에 떨어지고 말았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여인이 쓰러져 있어 다가가 보니 자신의 부인이었다. 남편은 부인을 묻어주고 섬을 떠났다. 그리고 몇 해 뒤에 부인이 보고 싶어 섬에 돌아와 보니 무덤에 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붉은 꽃이 피어 있었다. 그 꽃이 동백꽃이다. 그래서 동백꽃의 꽃말은‘난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어요. 당신만을 사랑 합니다.’이다.
 
또 동백은 그 화려한 자태에도 불구하고 향기가 없다. 그래서 벌, 나비가 달려들지 않는다. 과학적으로야 벌과 나비가 활동하지 않는 겨울에 꽃이 피니 당연히 벌, 나비가 달려들 일이 없겠지만, 어쩌면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여인이 벌과 나비가 달려드는 것을 피해 일부러 겨울에 꽃을 피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동백꽃은 필 때뿐만 아니라 질 때의 모습도 장관이다. 동백꽃이 떨어질 무렵, 동백나무 아래는 붉은 꽃들이 양탄자처럼 펼쳐져 있다. 3월, 동백이 한참 아름다움을 뽐내며 반겨줄 때이다. 한국의 동백 군락지 여기저기서 동백꽃 축제가 펼쳐지고 있으리라.
 
동백꽃은 말려서 차로 마시기도 한다. 또 열매에서 기름을 짜서 머리치장에 사용하기도 했다. 동백유는 화장품 원료뿐만 아니라 불포화 지방산 함량이 높아 식용유로도 사용한다. 동백나무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나무는 가구재, 조각재, 세공재로 사용한다. 간혹 목탁을 만들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작은 화단에 동백나무 두 그루를 심어놓고 동백나무 공부를 하다 보니 고국이 그리워진다. 파란 바닷물이 넘실대는 벼랑 위에 해풍을 견디며 우뚝 서있는 동백나무가 그려진다. 붉은색 동백꽃들의 합창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있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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