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03/28/22  

오랜만에 막내가 집에 왔다. 지난해 말 농구 트레이너를 하겠다며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둔 녀석이다. 7~8살짜리 선수들로 구성된 농구팀 코치로 일하고 있다. 아들네 팀은 3월 초 오렌지카운티 한 체육관에서 주최하는 'March Madness' 대회에 출전해 챔피언을 딴 바 있다. 또 아들은 코치로 일하면서 농구 개인 트레이닝을 하는데 약 30명 정도의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다음 주부터는 고교생으로 구성된 팀의 코치도 맡을 예정이라고 했다.
 
올 때마다 각종 생필품을 들고 가니까 오늘도 무언가 필요한 것을 갖고 가기 위해 왔을 거라 생각했다. 예상대로 휴지와 페이퍼타올 등을 챙겨들더니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툭 던졌다. 다시 집에 들어와 살겠다고. 다시 들어와 살아도 좋으냐고 묻는 것이 아니고 들어와 살겠노라는 통보였다.
 
주로 활동하는 곳이 오렌지카운티이다 보니까 지금 사는 곳에서 다니기 불편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펜데믹 이후 재택근무하며 1년 정도 집에서 지내다가 자유롭게 살겠다며 나갔던 녀석 아닌가. 난 네가 다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 번 나갔으면 죽이 되건 밥이 되건 네 힘으로 살아 보라고 했다. 만일 네가 당장 먹고 살기 어려워서 집으로 오겠다면 허락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집으로 돌아와 엄마 아빠랑 함께 살 생각을 하지 말라 했다.
 
돌아가신 아버지라면 어떻게 했을까. 요즈음 부쩍 매사를 아버지는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대학 졸업을 한 해 앞두고 집을 나온 나는 단 한 번도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만일 내가 다시 집으로 들어오겠다고 했으면 틀림없이 아버지는 받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이미 자기 스스로 살겠다고 작정한 이상 경제적 어려움이나 신체적 불편함 등의 피치 못할 경우가 아니라면 계속 스스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은 이렇게 그럴듯하게 포장했지만 속마음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아들과 함께 사는 것이 내게 불편함을 주기 때문이다. 우선 아들 팔뚝의 문신이 싫다. 집을 나가 살기 시작하고 8개월쯤 지나 팔뚝에 문신을 했다. 어느 UFC 파이터의 얼굴을 크게 그려 놓았다. 난 아들의 팔뚝을 보는 순간 기절하는 줄 알았다. 내 아들이 어떻게 저럴 수 있단 말인가. 아빠가 싫어하는 줄 알면서.
 
아들은 아버지 세대와 자기 세대가 다르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요즈음 젊은이들의 문화라면서 조금도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젊은이들이라고 모두 문신을 하지는 않는다. 젊은이들의 문화가 아니라 젊은이들 가운데 일부의 문화일 뿐이다.
 
아들이 팔에 문신을 새긴 이후 난 아들과 함께 있는 것 자체를 꺼렸다. 말을 섞기도 싫었다. 한동안 아들을 보면 내가 피했다. 내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건 거칠고 상스러운 욕이 절반 이상 섞일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두어 달 지났지만 아직도 그의 팔을 볼 수는 없다. 아니 영원히 아들의 문신한 팔은 보지 않을 것이다. 남의 팔에 문신도 보기 싫은데 하물며 내 아들의 문신을 어찌 용납한단 말인가.
 
사실 아들이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겠다고 할 때도 나는 말리고 싶었다. 그러나 의논이 아니라 통보에 가까운 아들의 말투에 입을 닫고 말았다. 아들이 내린 결정을 존중하고 힘닿는데 까지 협조하기로 굳게 마음먹었었다. 그리고 아들네 팀이 경기할 때마다 체육관을 찾아다니며 응원했다.
 
그러나 문신은 좀 다르다. 어떻게 몸에다 그런 흉측한 그림을 그것도 남의 얼굴을 새겨 넣는단 말인가. 끔찍하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아빠와 아들의 관계는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아들의 팔에 새겨진 문신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문신은 아들의 몸 전체로 번져나갈지도 모른다. 팔의 앞면에서 시작해 뒷면을 거쳐 다른 팔로 그리고 가슴과 등을 거쳐 다리로 심지어 머리와 얼굴에까지 문신을 한 아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몸서리가 처진다. 자신의 몸에 이런 흉측한 그림을 그려 넣은 아들을, 아들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받아들일 수는 없다.
 
만일 내가 문신을 하고 왔다면 아버지는 어떻게 했을까? 아버지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관대한 아버지도 문신만큼은 용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문신은 싫더라도 문신한 아들이 집으로 들어오겠다고 하면 기꺼이 받아들이셨을 거다. 하지만 난 아버지와 다르다. 마음을 돌이킬 생각이 없다.
 
가족이기 때문에 내가 하는 모든 것을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식이기 때문에 당연히 부모가 양보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도 고쳐야 한다. 가족이기 때문에, 부모와 자식이기 때문에 더욱 더 서로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
 
다음 주 토요일, 아들이 새로 맡은 고교생 팀의 첫 경기가 있는 날이다. 그날도 나는 틀림없이 관중석에 앉아 아들네 팀을 열심히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한 문신은 싫지만 나는 언제든 아들이 하는 일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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