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학부모 상담
04/04/22  

봄이 오는 것을 알려주는 것들이 제법 있는데 그중 하나가 개나리이다. 샛노란 개나리가 그득해져서 나의 시선을 사로잡기 시작하면 "봄이 오는구나"하게 된다. 그리고 이맘때면 찾아오는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학부모 상담. 학교 학부모 상담은 일 년에 두 번, 원래는 학부모가 학교로 직접 찾아가 선생님과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방문 상담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자연히 비대면 전화 상담으로 대체되었다. 
 
1학기 상담은 보통 교사보다 학부모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교사가 아이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그리 많지 않을뿐더러 여러 가지로 조심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상담 중에 어색한 기류가 생기지 않도록 미리 할 이야기들을 메모해 두는 편인데 이번에도 그럭저럭 무난하게 상담을 마쳤다.  
 
6학년인 딸은 매우 호탕하고 시원시원한 선생님을 만나 초등학교의 마지막 해를 재미있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선생님은 우리 아이가 착하고 야무지다는 칭찬도 잊지 않으셨다. 2학년인 막내의 선생님과는 총 20분의 상담 시간을 다 채우지 않고 10분 만에 상담이 끝났다. 선생님이 계속 서두르는 기색이었다. 학습적으로 문제가 없냐고 묻자 큰 문제는 없는데 "며칠 전 색칠을 하는데 컨디션이 별로였는지 테두리 밖으로 자꾸 삐져나가더라"고 말씀하셔서 살짝 놀랐다. 이런 걸 문제시하는 것은 뭐랄까 대단히 한국적이다. 
 
문제는 올해 초등 5학년이 된 셋째의 담임 선생님이었다. 일단 목소리와 말투가 매우 꼬장꼬장했다. 아니나 달라 상담을 마칠 무렵 벼르고 있던 한마디를 기어이 하셨다. "어머님이 아실지 모르겠는데 00는 말이 너무 많아요. 수업 중에 쓸데없는 소리 하는 것만 고치면 다른 문제는 없겠어요." 나는 아이에게 주의를 주겠다고 말한 뒤 상담을 마쳤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 "00는 선생님한테 완전히 찍힌 것 같네."하고 말했더니 남편은 걱정 말라며 웃는다. 본인이 어릴 때도 어머니가 학년 초에 학교에 가면 줄곧 듣던 소리라고. 무조건 말 잘 듣고 얌전한 학생을 선호하는 나이 든 여자 교사들의 전형적인 반응이니 너무 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1년을 함께 보내야 하는 담임 선생님인데 어찌 무시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하필 우리 셋째는 매년 조금 까다로운 담임 선생님을 만나는 편이다. 1학년 때도 부장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이었는데 워낙 깐깐하셔서 상담 때도 내 속을 어지럽히는 말씀을 꽤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2학년 때 선생님도 학교 내 최고령 선생님으로 역시 보통이 아니셨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첫째가 3학년 때였나 보다. 아이를 픽업하러 학교 앞에 차를 정차하고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이와 함께 어떤 중년 여자가 씩씩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걸음걸이에서도 엄청난 노여움이 느껴졌다. 내게 와서 본인은 우리 아이의 과학 교사인데 우리 아이 때문에 수업을 진행하기 힘들 정도라고 했다. 아이가 자꾸 수업 중에 잡담을 하고 친구들을 선동해 장난을 친다고 했다.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내 아들이? 
 
그 후로 나는 그 선생님과 거의 매달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아이의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씩씩거리며 나를 찾아왔던 그날 이후부터 줄곧 전보다 좋아졌다고 응답했고 학년이 끝날 때쯤에는 훌륭한 학생이 되었다고 했다. 아이가 성숙해진 것인지 부모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자제한 것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선생님께 지적받는 일은 없었다. 
 
그 일이 있었을 때도 남편은 오히려 선생님이 이상한 거라고 했다. 자식에 대한 믿음인지 쓸데없이 낙천적인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런 일에 대체로 대수롭지 않다는 식이다. 하긴 그러고 보면 남편뿐 아니라 나의 형제들도 어렸을 때 줄곧 학교 선생님에게 산만하다든가 장난이 너무 심하다는 지적을 받았었고 선생님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여성이 한시도 가만히 못 있고 장난이 심한 남자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내 자식도 쉽지 않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남편처럼 대응하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10년 넘게 내 자식을 키워놓고 고작 한 달 가르친 선생님이 하는 말마다 일희일비한다면 그건 또 곤란하겠구나 싶다. 그래도 다음 학부모 상담은 나 대신 남편이 좀 했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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