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미스터리
04/11/22  

사는 동안 풀리지 않는 3대 미스터리가 있다고 한다. 첫째, 냉장고는 꽉 찼는데 먹을 게 없다. 둘째, 월급은 들어왔는데 쓸 돈은 없다. 그리고 셋째, 옷장은 터져 나가는데 입을 옷은 없다. 누가 그러냐고? 사실은 방금 내가 지어냈다. 그러나 분명 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실제로 늘 친구들과도 이런 이야기를 하며 한숨도 쉬고 웃기도 한다.  세 가지 모두 솔직히 대충 그 이유를 알고도 있지만 그래도 쉽게 해결할 순 없기에 미스터리로 남겨두는 편이 정신건강에 이로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미스터리 중 세 번째, 옷장 미스터리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그 이유인즉슨 당최 요즘 옷장에서 옷을 찾아 입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작년 봄에는 무슨 옷을 입었었지? 매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입을 옷이 없다. 옷장은 꽉 차서 옷을 도로 집어넣으려고 하면 애를 먹는데 정작 외출할 때 입을 옷을 찾으면 하나도 눈에 안 들어온다. 상의를 고르면 같이 입을 하의를 못 찾겠고, 상하의가 준비되면 마땅한 겉옷이 없고, 겨우겨우 찾아 입고 현관으로 나가면 어울리는 신발이 없다. 늘 이런 식이다. 
 
새로운 계절마다 옷을 산 것 같은데도 입을 옷이 없다는 것은 당황스럽기만 하고 다시 옷을 좀 사야 하나 싶어서 온라인 사이트도 들락날락해본다. 심지어 종종 옷을 구매하는 온라인 사이트 장바구니에 이미 옷이 여러 벌 들어가 있는데 꽉 찬 옷장을 생각하면 쉽게 주문 버튼을 누를 수가 없다. 아…... 그렇다면 대체 작년 이맘때는 무슨 옷을 입고 다녔단 말인가? 
 
계절은 쉽게 모습을 바꾸지 않는다. 한낮에는 20도 가까이 기온이 올라가지만 아직도 이른 아침에는 2도까지 확 온도가 내려가기 때문에 내키는 대로 봄옷을 꺼내 입을 수가 없다. 햇살은 따사로운데 여전히 차가운 공기와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니 가볍게 입고 나갔다가는 몸을 잔뜩 움츠리며 나의 판단을 후회하게 된다. 그래서 요즘에는 옷이나 신발을 고르는 게 더디고 무척 신중해진다.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해서 옷뿐만 아니라 모자, 신발, 가방, 양말마저도 계절마다 달라지는데 나는 아직도 이게 잘 적응이 안 된다. 먹고사는 것도 바쁜데 복장마저도 철 따라 정리하고 준비해야 하는 데다가 나는 세 명의 아이들 것까지 챙겨야 하니 이 모든 게 참 쉽지 않다. 
 
오늘도 외출할 일이 있어서 옷을 고르는데 옷장과 서랍을 몇 번이나 열었다 닫았는지 모르겠다. '입을 옷 하나 없네. 왜 아직도 살을 못 뺐지? 작년에는 이 하의와 무슨 상의를 입었지? 이거 입기엔 아직 좀 춥지 않으려나?' 한탄, 후회, 혼돈, 망설임이 뒤섞여 답답했는데 가장 짜증스러웠던 것은 옷장이 너무 꽉 차있다는 사실이었다. 몇 해의 계절이 지나는 동안 한 번도 내 몸에 걸쳐본 적 없는 옷들이 옷장에 갇혀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다가올 계절에 한 번쯤은 입게 되겠지 싶어서 도로 집어넣고, 버리기는 아깝고 입기에는 뭔가 내키지 않아 고이고이 간직만 하고 있는 옷들을 보니 이것은 욕심인가 미련함인가...... 
 
왜 매번 옷장 다이어트에 실패하는가? 옷 정리할 때마다 꽤 버렸다고 생각하는데도 왜 옷장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가? 입을 옷도 없는데 옷장이라도 비어야 새 옷을 살 것 아닌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기껏 생각해낸 것이 옷장 미스터리였다. 
 
아주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오늘 나는 무사히 옷을 골라 입고 외출을 했다. 후드 셔츠, 롱 스커트에 양말을 신으니 그럭저럭 요즘 날씨에 적합한 듯했다. 후드 셔츠는 내일 다시 청바지랑 같이 입으려고 의자 위에 걸쳐 뒀다. 옷장을 열면 입을 옷이 마땅치 않아 생각이 복잡해지지만 이렇게 최선을 다해 옷장을 뒤지다 보면 미스터리가 조금은 풀리거나 익숙해지거나 하겠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 미스터리에 어리둥절하지만 조만간 대대적인 옷 정리를 실시하면 또 숨겨진 보물처럼 좋아하던 옷들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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