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승자
04/23/18  
고국을 떠나온 햇수가 더해질수록 고국 소식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비단 필자만이 아닌 듯하다. 요즈음 만나는 사람마다 한국 정치이야기이다. 나이가 많을수록 그 관심도가 높았고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몇 주 전에 맥도날드에서 만난 85살의 선배는 한국의 정치적 현실이 가슴 아프다며 장시간 열변을 토했다. 그날부터 좀 더 눈과 귀를 가까이 해서 보고 듣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20대 국회의원 선거, 여야 모두 보스를 무조건 따르라는 식으로 밀어 붙였다. 보스 정치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협의나 타협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여당 지도부는 보스의 눈치를 보며 알아서 처신했다. 보스에게 밉보여 공천에 떨어진 사람들은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야당은 선거를 위해 보스를 모셔다 놓고 흔들려고 했다. 모셔온 보스가 그럼 그만두겠다고 했다. 시정잡배들도 아니고 해도 해도 너무하다.
원칙이나 규칙도 무시하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무조건‘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싸웠다.
 
 
여야 할 것 없이 판을 깨고 나온 이들과 기존 판에 있던 사람들이 서로 비난하며 싸웠다. 정책대결은 없었다. 실컷 국민들을 우롱해놓고 투푯날이 가까워오자 잘못했다고 큰절을 하며 사죄했다.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노력했고, 달콤한 말로 국민들을 현혹했다.
 
 
선거에 임하는 자세부터 잘못되었다. 각당 지도부는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음을 잊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했다. 지역구 조정에서 공천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을 우습게 여겼다. 여당은 힘을 가진 자들이 보스의 눈치를 보며 보스의 의도대로 밀어 붙였다. 기존의 지지자들이 무조건 따라 올 것으로 생각했다. 야당은 야당대로 구태를 연출했다. 일부 세력이 떨어져 나와 새로운 당을 만들었다. 선거가 코앞에 닥칠 때까지 여야 모두 분란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당이 깨지고 독선과 아집이 마치 정책이나 정견이라도 되는 양 소리 높이 외쳤다.
 
 
더불어 민주당은 수도권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스스로 뼈를 깎는 노력을 하거나 좋은 인물을 영입하는 등의 결과로 얻은 게 아니다. 정부·여당의 국정운영에 분노한 국민들이 어쩔 수 없이 택한 선택이었다. 여당보다 의석을 하나 더 확보했다고, 국회의장을 낼 수 있다고 환호하고 웃고 있어서는 곤란하다. 큰 오산이다. 호남에서는 전멸하지 않았는가. 정당 득표율에서도 신생 정당, 국민의당에 밀려 3위에 머물렀다.
 
 
국민의당도 호남을 석권했다고 득의양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 또한 난센스다. 이는 더불어 민주당에 만족하지 못 하고 있는 호남의 민심임을 알아야 한다. 호남에서 국민의당에게 박수를 쳐준 것을 문재인에 대한 반감이라고 환호해서는 곤란하다. 수도권에서는 단 2석을 얻었을 뿐이다. 제 3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구시대의 유물인 보스 정치로는 더 이상 곤란하다.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으로 보스 정치는 끝났다. 협의와 토론에 의한 정치, 타협의 정치가 되어야 한다. 보스들의 무소불위와 무조건 따르는 추종의 정치는 더 이상 안 된다.
 
 
20대 총선의 승자는 어디에도 없다. 모두 패자들뿐이다. 당선자나 낙선자나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은 모두 머리 숙여 국민들에게 사죄해야 한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정치가 되어야 한다.
 
 
굳이 진정한 승자를 가리라고 한다면 이번 선거의 승자는 국민들이다. 정확하게 민심을 표출한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들을 위하는 길인가를 진정으로 생각하라는 메시지가 분명하게 전달되었기를 바란다.
 
 
이제 곧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다. 각 정당은 후보자 선출을 위한 경쟁이 뜨거울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를 위해 이리 저리 몰려가며 파당을 지었던 사람들이 또 다시 피터지는 싸움박질을 시작할 것이다. 제발 안에서 싸우고 국민들 앞에서는 추태를 보이지 않길 바란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갈등과 균열은 당내에서 충분한 협의와 토의를 통해 봉합하고 결과가 나오면 힘을 합쳐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고국의 대통령 선거가 온 국민이 어울려 벌리는 축제의 한 마당이 되고, 축제가 끝난 뒤에 온 국민이 다 함께 승자가 되는 그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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