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산으로
04/18/22  

 비가 한바탕 쏟아진 며칠 뒤 산에 올랐다. 한때 두 친구와 매주 찾던 바로 그 산이다. 그때 산을 오르며 우리는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대단한 약속은 아니었다. 셋이 함께 히말라야에 다녀오자는, 산에 다니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그런 약속이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주말산행이 10여 년 잘 지속되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흐지부지 되었고 히말라야에는 나 혼자 다녀오게 되었다.
 
친구들과 산에 다니지 못하게 되면서 나는 SGWA(San Gorgonio Wildness Association)이라는 단체에 가입해서 레인저 교육을 받고 자원봉사 레인저가 되어 여전히 주말이면 산에서의 생활을 계속했다. 그리고 2017년, 2018년 히말라야를 찾았다. 히말라야 산봉우리, 안나푸르나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도 차례로 다녀왔다. 히말라야에 다녀온 후 얻은 고산병 후유증으로 고도가 조금만 높은 산에 오르면 힘이 많이 든다. 2019년 마운틴 발디 정상에 오르면서 꽤나 고생한 후로는 산행을 자제하고 있다. 마운틴 발디는 해발 10,064피트(3,068미터)의 산인데 너무 힘들게 올랐고, 육체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이제 산도 마음대로 오를 수 없구나’하는 데서 오는 정신적 충격이 더 심했다. 그 후로는 동네 공원이나 가까운 곳에 있는 낮은 산을 찾아 걸었다. 해발 6,000피트나 7,000피트 정도의 산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웃에 사는 친구가 산에 가자고 연락을 해왔다. 매일 하루 10마일씩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 친구다. 어느 산에 갈 거냐고 물으니 Potato Mountain에 가자고 했다. 이 산은 두어 번 올랐던 산이고 타운뉴스에도 두 차례 소개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조금 더 오르면 친구들과 매주 오르던 Ice House Canyon Trail이다. 그러나 Ice House Saddle(편도 3.6마일)까지 갔다 오는 것은 무리다. 목적지를 Cedar Glen(편도 2.5마일)으로 하면 걸을 만하다. 트레일 헤드에서 1마일 정도 가서 왼쪽 길로 꺾어서 1.5마일 정도 가면 시다 그렌이다.
 
맑고 청명한 하늘을 즐기며 걸었다. 입구에서 오르는 길은 그대로인데 물길이 옛날과 다르게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수량이 풍부하지 않은 탓으로 물소리도 예전 같지 않았다. ‘콸콸콸’이었다면 지금은 ‘졸졸졸’ 소리 내며 흐르고 있었다. 마지막 오르던 때가 불과 10년이 채 안 된 것 같은데 그 사이에 물길이 바뀌었다. ‘내 놀던 옛 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산천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라는 노래 가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랜만에 산길을 걸으니 감개무량했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서니 맞은편 산에 쌓인 눈들이 녹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4월에도 녹지 않고 있다니.
 
친구들과 눈 쌓인 산을 함께 올랐었다. 그때는 힘든 줄 모르고 걸었다. 그저 즐겁고 유쾌했다. 길이 눈에 덮여 우리가 길을 만들며 올라가야 했다. 눈이 쌓여 발걸음을 옮기기 힘들 때도 무릎까지 빠지는 눈 위를 걸었다. 내려 올 때는 아예 눈 위에 앉아 엉덩이 썰매를 타고 내려오기도 했다.
그때 함께 걷던 친구들이 떠올랐다. 한 친구는 심장에 문제가 생겨 등산은 무리라는 의사에 말에 따라 산을 찾지 않게 되었고, 선교와 전교로 바삐 지내는 바람에 한동안 왕래 없이 지내다가 2년 전부터 나와 함께 매주 두 차례 공원을 걷고 있다. 지금은 동남아 어느 나라에서 선교활동을 위한 기반 구축을 위해 애쓰고 있다. 다른 한 친구는 바닷가로 이사한 후 외부활동을 중단하고 여행과 골프 등으로 은퇴생활을 즐기고 있다. 물론 일 년에 한두 번은 만나고 있다.
 
시다 그렌에 도착하니 바람이 차다. 도시에서는 화씨 96도라고 하는데 산속은 추웠다. 배낭 깊숙이 넣어 두었던 오리털 재킷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라면을 끓였다. 달걀도 넣고 펄펄 끓인 라면을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나눠 먹었다. 사과를 깎아 먹고 친구가 직접 짜온 레몬주스도 마셨다.
 
친구는 야외활동을 할 때면 언제나 자신이 직접 끝을 뾰족하게 만든 쇠꼬챙이와 쓰레기봉투를 들고 걸으며 주변의 각종 쓰레기들을 주워 담는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산에 무슨 쓰레기가 있겠는가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의외로 쓰레기가 많다. 패트롤 레인저들의 중요한 일 중에 하나가 바로 쓰레기 수거이다. 친구에게 레인저를 하는 것이 어떤가 물으니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와 함께 레인저를 하면 좋겠다고 했다. 히말라야에 다녀와서 고산병 후유증으로 자신감을 잃고 레인저 봉사활동을 완전 중단한 상태였다. 게다가 코로나 팬데믹까지 겹쳐 이래저래 활동을 접고 있었는데 다시 활동을 재개하고 싶은 생각을 갖고 있었던지라 친구가 함께하자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친구는 SGWA 웹사이트에 들어가 자원봉사 레인저 훈련 참가를 신청하고 레인저 훈련 일자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산길을 같이 걸으며 함께 봉사할 친구를 만났으니 또 다시 산에서의 생활을 새롭게 시작해야겠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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