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중
05/09/22  

뒤뜰에 토마토가 자라고 있다.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사다 심은 적은 없다. 저절로 싹이 나고 자랐다. 3년 전 토마토를 심었던 자리다 보니 토마토 열매가 떨어져 흙속에 묻혀 있다가 씨앗이 발아해서 싹을 틔운 모양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하루에 한 번씩 물을 주니 잎과 줄기가 무성하게 자랐다. 이리저리 넝쿨을 뻗어 가며 커가더니 파란 열매를 맺고 어느새 빨갛게 익기 시작했다. 토마토의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 대여섯 알씩 따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토마토에 물을 듬뿍 주던 어느 날, 못 보던 싹이 또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잡초라는 생각이 들었다. 뽑아 버릴까 하다가 좀 더 자란 다음에 무엇인가 확인하고 뽑기로 했다. 물을 주니 이름 모를 녀석들은 쑥쑥 자랐다. 어디서 봤더라. 분명히 어려서 동네 어귀나 마을 근처의 숲에서 본 적이 있다. 관계망 서비스 여기저기에 사진을 보여주며 물었다. 잠시후 정체불명의 녀석은 '까마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봄이 되면 산과 들에서 진달래꽃을 따먹었다. 늦은 봄, 초여름에 접어들 때쯤에는 아카시아꽃을 따먹었고 이어서 버찌, 산딸기, 오디로 이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을 것이 귀하던 때라 이런 꽃이나 열매를 따먹었다고 하는데, '먹을 것'이라는 데 비중을 두기 보다는 '어린 아이들이 어울려 다니며 즐기는 놀이' 중의 하나였다고 보는 것이 더 사실에 가깝고, 설득력 있는 지적이 아닐까 싶다. 도시 근교나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4,50 이상 되신 분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마을이나 학교 근처의 산과 들을 싸다니며 웃고 떠들며 따 먹었던 추억(기억)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버찌나 오디, 산딸기는 맛까지 그럴 듯하지 않았던가.
까마중도 그런 먹거리 중의 하나였다. 여름이 막바지에 달해 초가을로 접어들 무렵 동네 여기저기에 무성하게 자란 풀더미 속에 까만 열매가 대롱대롱 달려 우리를 유혹했다. 어려서 따먹은 기억은 있는데 진달래나 아카시아. 버찌, 오디처럼 자주 먹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진달래꽃, 아카시아꽃, 버찌, 오디, 산딸기 등에 대한 기억은 뚜렷한데 까마중에 대한 기억은 없다는 사람들이 좀 있었다.
 
까마중이라는 이름은 까맣게 익은 열매가 스님의 머리 모양과 흡사하다는 데서 유래했으리라. 지방에 따라서는‘까마종이' 또는 ‘깜뚜라지’라고도 불렀다. 까마중의 학명으로 사용하는 'nigrum'은 검은 열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식재료로 활용할 때에는 주로 어린순을 나물로 무쳐 먹는 것이 보편적이고, 꽃잎과 줄기 등도 약재로 쓴다.
키는 20~90cm 정도이며 곧추서는 줄기에서 가지가 옆으로 많이 나온다. 잎은 서로 어긋나 있으며 잎 가장자리는 거의 밋밋하다. 꽃은 하얀색이며 5~7월에 잎겨드랑이에서 몇 송이씩 무리지어 피고 꽃부리는 5갈래로 갈라진다. 열매는 수분이 많으며 육질이 부드럽고 완전히 익어도 벌어지지 않는다.
 
열매는 단맛이 나고, 순과 줄기, 뿌리 등은 약간 쓴맛이 난다. 기력을 보충해주어 자양강장제로서의 효능이 탁월하고, 이뇨작용을 원활하게 하며 신장 결석에도 큰 도움이 된다. 열을 내리고 피로감을 없애 주는 효과도 있다.
까마중은 꽃과 열매, 잎, 줄기 등 거의 모두를 식용, 약용으로 활용할 수 있다. 열매는 말려서 달이거나 즙을 내면 약처럼 복용할 수 있다. 어린순은 나물로 무쳐 먹거나 다른 재료와 함께 볶아 먹고, 비빔밥의 재료로도 쓸 수 있다. 뿌리와 줄기, 꽃 등은 술로 담그면 약주로 마실 수 있다. 단 독성이 강해서 지나치게 많이 먹을 경우 식중독을 일으킬 수도 있으므로 다량을 일시에 복용하는 일은 삼가는 것이 좋다.
 
드디어 우리집 까마중 6 그루가 꽃을 활짝 피웠다. 하얀 꽃이 참 예쁘다. 까만 열매는 기억하지만 그 꽃이 이렇게 하얗게 예쁘게 핀다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예쁜 저 하얀 꽃이 까만 열매를 맺게 된다니. 다 익은 까마중을 한 알 한 알 입에 넣다보면 어린 시절 추억이 새록새록 나지 않을까 싶다.
 
사실 내가 기억하는 까마중은 시큼하지 않은 것이 달콤하지도 않고 그냥 싱거운 맛이 아니었던가 싶다. 먹기는 먹었지만 맛있어서 먹었던 것이 아니고 먹는 열매라니까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며 따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불쑥 우리집 화단에 나타난 덕분에 까마중 공부를 하다보니 여러 가지 효능을 지닌 약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번 기회에 까마중 열매를 말려서 달여 먹기도 하고 즙을 내어 마셔보고 뿌리와 줄기로 술도 담가 볼 생각이다.
 
까마중 추억이 떠오르는 분들은 술이 잘 익을 때쯤 연락하기 바란다. 한 잔 나눠 마시며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 속으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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