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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과 보살핌
05/16/22  

초등학교 동창생과 아침을 함께했다. 8시에 식당에서 만나 식사를 하고 친구집으로 이동했다. 친구가 자기 정원을 구경시켜 준다고 했다. 친구는 고추, 들깨, 호박, 파, 참나물, 비듬나물, 도라지, 부추, 상추, 토마토 등을 재배하고 있었고, 아울러 여러 종류의 선인장, 서양란, 오렌지나무, 사과나무, 감나무, 석류, 낑깡(금귤), 무화과 등이 정원을 장식하고 있었다.
 
친구는 아무 거나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면 화분에 옮겨 주겠다고 했다. 우리집 조그만 뒷뜰은 이미 가득 차 있다고 극구 사양했으나 친구의 주고 싶은 강한 의지를 꺾지 못했다. 들깨와 호박 모종, 일 년에 한 번 꽃이 핀다는 선인장 한 그루와 서양란 한 촉을 받아 올 수밖에 없었다.
 
호박과 들깨 모종은 바로 화단으로 옮겨 심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잎이 시들시들한 것이 곧 죽을 것만 같았다. 친구에게 그 모습을 사진 찍어 보냈더니 햇볕이 강하고 물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니 그늘을 만들어 주고 물을 충분히 주라고 했다. 한 일주일 그늘을 만들어주면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그리고 저녁에 또 물을 많이 주라고 했다. 친구가 하라는 대로 물을 충분히 주고 신문지로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저녁에 신문지를 들춰보니 곧 죽을 것 같던 모종들이 아주 싱싱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친구의 말대로 또 물을 충분히 주었다.
 
사람, 동물, 식물 할 것 없이 모든 생명체는 보살핌과 돌봄을 통해 성장하는가 보다. 친구는 들깨 한 그루만 있으면 깻잎을 밥상에 올릴 만큼 거둘 수 있고, 호박도 한 그루만 있으면 두 식구 먹는데 충분하다고 했으니 어서 빨리 자라 깻잎을 따고 호박을 수확해서 된장국 끓여 먹는 날을 고대한다.
 
한국에서 사촌형이 전화했다. 거의 연락이 없이 가끔 카톡으로 안부만 묻고 지내던 터라 심각한 일이 있는가 보다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사촌형 특유의 핵심에서 벗어나 말을 빙빙 돌리며 얘기하는 것을 한참 듣고 있었다. 형은 족히 30분은 혼자서 이야기 했다. 형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고조부, 증조부 산소가 멀리 떨어져 있어 장손인 당질이 명절이나 제사 때마다 성묘하고 차례 지내려 다니기 힘드니 할아버지, 큰아버지, 사촌 형들이 있는 묘역으로 모셔오면 좋은데 이장하는데 따르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얼마가 드느냐 묻고 동생들에게 얘기해 놓을 테니 동생들에게 전화를 따로 하라고 했다. 동생들에게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사촌형이 전화할 테니 도와주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나서 사촌형으로부터 새롭게 단장한 산소 사진들이 전송되어 왔다. 사촌형에게 어떻게 된 일인가 물으니, 동생에게 전화했더니 바로 돈을 부쳐 주어 일사천리로 진행했노라고 했다.
 
어제 5월 12일(목) 강동구청역에서 첫차를 타고 센트럴시티 종합터미널에 가서 7시에 출발하는 충남 보령행 첫차를 탔다. 버스는 터미널을 출발한 지 약 2시간이 지난 9시가 조금 넘어 보령에 도착했다. 터미널에 기다리고 있던 사촌형, 장손과 함께 선산으로 향했다. 묘역에는 고조부, 증조부, 조부, 백부 두 분, 사촌형 두 분의 분묘가 조성돼 있고, 국립묘지에 계신 아버님의 비석을 세워 모셔 놓았다.
 
장손은 묘역 가장자리에 대추나무와 감나무를 심었다고 했다. 손주들이 찾았을 때 대추도 따먹고 감도 따먹게 하려는 생각이라며 먼 훗날을 얘기했다. 아들 둘이 아직 결혼도 하지 않고 있는데 언젠가 있을 일을 생각하고 있는 장손의 나이를 헤아려 보니 어느새 예순을 살짝 넘기고 있었다. 흐르는 세월을 거스를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 세월의 한 자락에서 예외 없이 삶의 마침표를 찍어야만 한다.
 
묘역 앞은 탁 트여 있어 논과 밭이 내려다보이고 예전에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큰아버지 산소가 있던 산이 마주하고 있다.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산소를 한자리에 모시고 보니 앞으로 보살피고 관리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장손은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생명을 가진 것이라면 어떻게 보살피느냐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진다. 시들시들하던 잎사귀가 다시 싱싱해져 풍성한 먹거리를 제공하기도 하고,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반려동물로 자라기도 한다.
생명이 없는 것들도 마찬가지이다. 집은 사람이 거주하면서 돌보아야 쉬 망가지지 않고 자동차도 제때제때 정비를 해 주어야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무생물도 관심을 가지고 살피면 그만큼 혹은 더 많은 유익을 돌려준다.
 
이장을 하면서 종중의 묘역을 정비했으니 앞으로 후손들은 더 편하게 조상을 찾아뵐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친인척들간의 유대를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조상에 대한 관심이 후손들에게 더 큰 유익을 선물한 셈이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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