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입가경(漸入佳境), 오리무중(五里霧中)
04/23/18  

갈수록 태산이라 했던가? 지난 3일 인디애나 예비선거에서 대승을 걷으며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공화당 대선주자로 사실상 확정되었다. 2~3위의 후보들은 모두 사퇴했다. 설마하며 지켜보던 공화당 수뇌부에 비상이 걸렸다. 당은 완전히 분열되었다.

 


선거 초반 트럼프는 여성 비하, 인종 차별, 인신공격 등의 막말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선거가 중반에 접어들면서‘아시아에 전쟁이 발발하면 개입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 해결하도록 두겠다. 한국이나 일본은 자기 나라를 지키는데 드는 방위비 전액을 자기들이 부담해야 한다. 미군 주둔 비용도 전액 부담해야 한다.’는 등 국내외 현안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트럼프는 또 강력한 자국 보호무역을 주장한다. 중국의 엄청난 대미 무역흑자를‘성폭행’에 비유하며 중국을 무역으로 압박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수입되는 상품에 최대 4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대중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관세를 45% 올리겠다는 것은 자유 시장경제 체제를 무시한 몰지각한 발상이다. 미국 제조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 이유를 저렴한 중국산이 들어오기 때문이라면서 관세를 올려서 막겠다는 발상 자체가 몰상식의 극치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엄청난 물가 상승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중국 제품의 수입을 막는다고 미국 내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설령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해서 소득이 늘지도 않는다.

 

 

만일 아이폰을 전량 미국에서 생산하면서 모든 부품을 미국산으로 대체한다면, 부품가격은 지금보다 50% 이상 오를 것이란 예측이 있다. 조립 비용, 공정비용, 테스트 비용, 물류비용 등의 인상 요인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소비자는 최소한 2,000달러는 줘야 구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렇다고 미국에서 비싸서 팔기 힘든 제품을 해외에서 판매할 수도 없고, 결국 중국과 무역 전쟁을 벌일 경우 미국이 입는 손실이 꽤 심각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설령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해도 모든 공약을 다 추진할 수는 없겠지만, 실제로 실현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상상만 해도 끔직하다.

 

 

크고 작은 대립과 분쟁이 그치지 않으며 테러가 더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다. 군사 강대국들이 주변의 약소국들과 무력 충돌을 일으킬 것이고 세계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말 것이다. 전 세계가 약육강식의 장으로 변할 것이다.

 

 

전 세계의 경제, 통화, 정치적 중립이 완전히 무너지게 될 것이다.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는 더 이상 달러화를 국제결제통화로 사용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중국은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게 되고 더 나아가 막강한 군사력으로 미군 철수 혹은 축소로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이 약화됨을 기회삼아 아시아의 맹주로 굳건한 자리 매김을 할 수도 있다.

 

 

사실상의 공화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후, 도널드 트럼프는 멕시코의 국가기념일인‘씬코 데 마요’를 맞아 트위터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멕시코 음식인 타코 먹는 사진을 올려놓고‘히스패닉을 사랑한다’고 밝혔다. 멕시코 이민자를 범죄자 취급하며 이들을 강제 추방하고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겠다는 막말을 하던 그가 대선 본선행이 확실해 보이자 히스패닉 표심을 잡기 위해 태도가 돌변한 것이다. 후안무치(厚顔無恥)한 모습이다. 얄팍한 장사꾼의 속성을 들여다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한 그를 보면서 그가 했던 공약들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음을 느낀다.

 

 

실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한국에 요구하고 있는 트럼프식 외교·안보 공약들이 상당 부분 수정될 것이다. 한·미동맹 근간을 흔드는 이야기들이 트럼프 지지로 이어질 만큼 미국의 정치 판도가 변하기는 했지만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은 의회에서 고강도의 예산 통제와 견제를 받고 있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정부, 의회, 특히 공화당 내부에서도 트럼프의 거친 공약들이 정제될 것이다.

 

 

오염된 물을 식수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모든 물을 식수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수 비용보다 새로운 식수원 개척이 더 경제적이라면 먼 곳에 있는 물을 끌어오든 지하수를 개발하든 다른 합리적인 방안들이 논의될 것이다. 지금 공화당을 비롯한 정치권 일각에서 제3 후보론이 거론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이다.

 

 

지난달 두 후보에 대한 NBC방송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과반 이상이 한 사람은‘기질이 좋지 않다’, 또 한 사람은‘정직하지 못하다’고 답한 것을 보면 점입가경(漸入佳境), 오리무중(五里霧中)의 현 정국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이 어떨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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