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 만난 5·18
05/23/22  

동네 목욕탕에 갔다. TV 소리가 크게 들렸다. 두 사람이 흘끔 나를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 사람은 이발의자에 앉았고, 다른 한 사람은 좀 떨어져 TV를 향해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손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큰 소리를 내었다. 이발사와 세신사로 추정되는 두 사람은 제42주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실황 중계를 보면서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옷장을 열고 옷을 벗어 넣으며 그들의 다투는 듯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5·18 광주사태'를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트리기 위해 북한의 사주를 받은 자들이 일으킨 만행이라며 힘을 주었고, 다른 한 사람은 광주사태가 아니고 '5·18민주화운동'이고, 독재에 항거한 시민운동이라며 열을 내었다.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의 모습이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동안 집권세력에 의해 진실은 밝혀지지 못하고 왜곡된 채로 이리저리 왔다갔다 떠돌아 다녔다. 그렇다보니 왜곡된 진실을 참이라고 믿기도 했고, 국민들 각자가 서로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살았다.

기록에 의하면 5·18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광역시에서 시작해 전라남도 지역으로 확산된 민주화 운동이다. 5월 18일 광주지역의 학생 시위로부터 출발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신군부는 계엄군과 공수부대를 보내어 잔악하게 진압하기 시작했다. 열흘간 이어진 운동은 탱크로 무장한 계엄군의 대대적 진압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일단락되었다. 5·18민주화운동은 한국 현대사 가운데 집권세력에 대항한 최초의 무장항쟁이라는 중요한 역사적 의의가 있으며, 이후 6월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주화 운동의 실질적인 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42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민간인 학살의 진상이 낱낱이 밝혀지지 않아 왜곡 축소되어 있는 실정이며 발포를 지시한 최고 책임자가 누구인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2021년 12월 27일 개개인의 조사신청은 마감되었지만 5·18진상규명위원회(www.518commission.go.kr)가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음으로 명명백백하게 밝혀질 날도 머지않았다.

"국민 모두가 광주시민입니다. 전 국민이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다 함께 파헤쳐 나갑시다." 8일 전에 취임한 대통령의 둘로 갈라진 국민들의 소통과 화합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언제 큰소리를 내며 언쟁을 했냐는 듯이 웃으며 음식을 펼쳐 놓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자기 집에서 해온 빈대떡이라며 함께 먹자하자 다른 사람은 김치병에서 김치를 꺼내 접시로 옮기면서 싱글벙글했다. TV화면에서는 '님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고 대통령과 여야 국회의원, 장관, 대통령실 참모 등과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유가족들이 손을 잡고, 또 한쪽에서는 주먹쥔 손을 힘차게 흔들며 목청 높여 부르고 있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노랫말에도, 가락에도 비통함과 애절함이 담겨 있다. 단조 행진곡이 주는 영향이리라. 1980년 말부터 민주화 운동 집회를 시작할 때 민주화 운동 열사들에게 바치는 묵념 후에 함께 부르던 노래였다. 그리고 2013년 6월 국회에서 5·18민주화운동의 공식 추모곡으로 지정하자는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목욕탕에서 만났던 두 사람처럼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이 다툼을 멈췄으면 좋겠다. 제 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서 여야국회의원, 장관, 대통령 부속실 사람들과 5·18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 유족들이 잡은 손을 흔들며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던 것처럼 온 국민이 서로 손을 맞잡고 미래의 새 역사 창조를 위해 나아갔으면 좋겠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아직도 노래는 귓가를 맴돌고, 눈앞에는 모든 참석자들이 손을 꼭 잡고 흔들며 하나 되었던 기념식장의 모습이 오버랩되고 있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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