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자락길을 걸으며
05/30/22  

토요일 오후, 중학교 동창생들과 만나 안산 자락길을 걸었다. 10 명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걸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이 얘기 저 얘기 나눴다. 주말이라 그런지 꽤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왜 토요일에 만나기로 했냐고 물으니 아직도 일하는 친구들이 있어 한 사람이라도 더 모이려면 토요일이 좋다고 했다.

오늘 모인 10 명 중에 5 명은 완전히 은퇴했고, 5 명은 아직 일하고 있다. 고등학교 교사로 정년퇴직한 친구는 퇴직한 다음 날부터 건물 관리인으로, 대기업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던 친구는 아내가 운영하는 약국에서 경리와 기타 업무를, 그리고 대기업에서 퇴직한 후 자기 사업을 해온 친구는 최근에 아들에게 일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들에게 물려주고 은퇴할 계획이다. 개인사업을 하다가 십여 년 전에 은퇴한 친구는 10여 년을 쉬다가 최근에 새마을금고에서 방문객들 안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루에 3시간씩 닷새 일하고 한 달에 70여만 원을 받는다. 경쟁이 심한데 자기가 뽑혔다며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했다. 다른 5 명도 온전히 놀고먹는 것은 아니었다. 손주들을 돌보면서 텃밭을 가꾸며 소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친구들도 일자리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고 싶다고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55~79세에 해당하는 사람들 가운데 장래에 일하길 원하는 남성은 전체의 77.4%, 여성은 59.6%로 나타났다. 나이 들어서도 일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놀면 뭐하냐. 일해서 한푼이라도 벌어야 한다'는 한국인의 정서를 잘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미국 사람들의 경우는 은퇴 후에는 자기 소득에 맞춰 살면서 인생을 즐기려 한다면 한국인들은 일하면서 즐기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여성보다 남성이 더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가정의 생계 부양은 남성 몫’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많고, 60대 이상 남성들은 소득이나 계층에 관계없이 은퇴 후에도 일을 해야 한다는 심리적 강박을 지니고 있다는 반증이 아닌가 싶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0년 발표한 ‘노인실태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현재 경제활동을 하는 노인 남성의 24%는 ‘경비·수위·청소’ 업무에 종사했다. 경비원은 노인 일자리 중에서도 나은 편에 속한다. 택배를 포함한 ‘운송·건설 관련’ 일을 하는 경우가 28.3%, 폐휴지 줍기를 포함한 ‘공공환경 관련’ 업무를 하는 남성들도 8.9%로 나타났다.

며칠 전에 어릴 적 동네 친구가 안부 전화를 했다. 친구는 두 달 전까지 인천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가 공사가 끝나자마자 고향에 내려와 살고 있다며 시간 있을 때 꼭 들리라고 했다. 친구는 아들 명의로 된 13평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영세민으로 등록을 했더니 정부에서 한 달에 58만 원을 준다며 여기에 30만 원 정도를 보태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하루를 어떻게 소일하는가 물으니 아침에 일어나 간단하게 식사하고 산책을 한 후에 탁구장에 가서 탁구를 치다가 점심시간에 맞춰 복지관에 가면 도시락을 하나씩 준다고 했다. 그 도시락을 받아 산으로 올라가 좀 걷다가 도시락을 까먹고 집에 와서 쉬다가 저녁을 해먹고 잠자리에 든다고 했다. 자기가 일하던 회사가 지금도 충청도 어느 도시에서 공사를 하고 있다며 일하러 갈까 말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회사에서는 오라고 하는데 나이가 있다 보니 이제는 노동일이 힘에 부친다는 것이었다. 평생 경리직원으로 일하던 친구는 퇴직 후 식당을 운영하다가 5~6년 전에 문을 닫고 노동일을 시작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재취업 남성 노인의 절반 이상(56.5%)은 생계를 위해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친구도 “자식들은 형편이 어려워 용돈을 주지 못하고 최소한의 생활비는 필요한 상황”이라며 “모아둔 돈이 없으니 건강에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일해야 한다”고 했다. 이 친구처럼 노인들은 자식에게 손 안 벌리고 용돈이라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있다.

노인들은 대부분 원래 직업보다 눈높이를 낮춰 재취업한다. 교직에서 정년퇴직하고 건물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는 친구는 다달이 연금은 연금대로 받으면서 따로 “적은 돈이지만 다달이 아내에게 갖다 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친구는 “평생 교단에서 일했지만 이제 다 내려놨다”며 “자식들에게 나이들어서도 일하는 아빠를 보여주는 일이 자랑스럽지 않냐"고도 했다.

친구들과 3시간 정도 걸은 후에 저녁 먹기로 약속한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으로 직접 와서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과 만나 한바탕 떠들썩하게 인사를 나누고 어느새 우리들은 고달픈 삶으로부터 벗어나 어릴 적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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