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좋지만
05/30/22  

어머니날이라고 남편이 사준 꽃이 화병에서 시들어 간다. 하남까지 가서 5만 원어치를 샀는데 일반 꽃집보다 두세 배 푸짐하게 꽃다발을 2개나 만들어 주었다. 남편은 봄 기분을 내고 싶다며 작은 꽃 화분도 사서 부엌 싱크에 올려 두었다. 그 꽃들도 처음 우리 집에 올 때보다 상태가 별로 안 좋아 보인다.

남편은 식물에 관심이 많아서 때때로 새 화분을 집으로 들이고 싶어 한다. 내가 반대만 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끊임없이 식물을 사들였을 것이 분명하다. 내가 아무리 손을 내저으며 만류해도 어느새 나는 동의하지 않은 식물들이 우리 집에 와있었고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남편도 사는 것은 좋아했지만 열심히 가꿀 여력은 되지 않았고 나는 전혀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꽃, 나무 같은 초록색 식물과 식물이 주는 싱그러움과 파릇파릇함은 좋아하지만 가드닝 자체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식물 종류에 맞게 물을 주고, 벌레가 생기면 약을 치고, 식물이 커가면 분갈이를 해주며 관심과 애정으로 가꿔야 할 텐데 전혀 그런 엄두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았던 미국집에는 아주 작은 뒤뜰이 있었는데 남편이 직접 만든 텃밭에 꽃과 나무를 키울 때도 나는 물 한번 챙겨 준 적이 없었다. 포도나무가 병들어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며 남편이 한숨을 쉴 때도 나는 그 나무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애정을 갖고 키우던 식물이 죽어버리면 속상한 마음을 넘어 죄스러운 마음이 들기 때문에 겁이 났던 것 같다.
처음 나만의 화분을 키우기 시작한 것은 십 대 후반에 친구가 사준 작은 선인장이었다. 선인장은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키우기 쉽다며 친구가 사준 선인장에는 예쁜 꽃도 피어 있었다. 얼마나 앙증맞고 귀엽던지 바로 그 선인장과 사랑에 빠져서 책상에 앉으면 줄곧 선인장을 보고 또 봤다. 하지만 그냥 놔두기만 해도 알아서 버틴다는 그 선인장은 그리 오래 함께하지 못했다. 꽃이 지고 얼마 안 가서 선인장 몸통마저 죽어 버리고 나자 "아, 나는 식물을 키울 자격이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자괴감에 사로잡혔고 친구를 볼 면목도 없었다.

그 이후에 결혼을 하고 몇 차례 용기를 내어 작은 꽃과 나무들을 사서 키웠는데 물 주는 것조차도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모른다. 식물도 생명인데 나 때문에 또 식물이 죽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걱정부터 앞섰다. 꽃다발에 꽃들이 시들어 죽어가면 그래도 마음이 그리 괴롭진 않다. 꽃다발은 1-2주 버텨주면 잘 버텼다 싶어서 더 가벼운 마음으로 놓아줄 수 있다. 하지만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던 화분에 식물이 죽으면 마음이 참 씁쓸하다. 화려한 꽃다발이 잘난 이웃집 엄친아 같은 존재라면 화분 식물은 내가 키우는 자식처럼 애잔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식물의 세계는 참으로 신비하고 경이롭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 버금갈 정도로 많은 관심과 정성을 쏟아야만 하는 일이다.

우리집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가드닝에 관심이 많다. 아이들은 콩과 옥수수 알갱이, 먹다가 남은 수박씨나 아보카도씨까지 흙에 파묻었고 '에이 설마 싹이 나오겠어' 했던 아보카도는 어느새 막내보다 더 커버렸다.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빈 화분에 닥치는 대로 씨를 파묻고 물을 주며 싹이 트길 기다렸다. 호기심과 기대, 실망과 기쁨을 반복하면서도 식물에 대한 관심은 계속되었다.

요즘도 우리 집 베란다에 식물들은 모두 막내가 관리한다. 물이 부족해 잎사귀가 축 늘어져 온몸으로 물을 달라고 아우성치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막내가 부지런히 나가서 물을 준다. 나에게 이러쿵저러쿵 식물의 상태를 보고하는 꼬마 가드너의 모습이 사뭇 진지해서 너무 귀엽다. 그리고 식물 킬러가 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식물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나를 닮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운 아보카도 나무에 아보카도 열매가 열렸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지만 물만 주면 쑥쑥 커가는 아보카도 또한 기특하다. 이미 나는 돌봐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반려 식물까지 키울 용기는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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