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셨다
06/06/22  

남편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거의 3년을 꼼짝없이 집에 누워만 계셨다. 지병은 없으셨지만 거동을 거의 못 명절에 찾아뵙는 것조차 죄송했다. 누워계신 할머니 앞에서 불편하신 곳은 없나, 식사는 잘하시냐고 묻는 것 자체가 모순이고 가식이었다. 그리고 찾아뵙지 못한 시간 동안은 마음 한구석이 항상 불편했었다. 우리 모두는 할머니의 죽음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날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시어머니와 시이모님이 아흔 다섯 노모의 임종을 지키셨고 남편과 나는 다른 가족들과 함께 입관식과 발인을 지켜봤다.

조문객을 받는 장례식은 생략했다. 가족들만 모였다. 할머니 덕분에 가족이 모인 것이다. 나는 처음 만나는 시외할머니의 증손주도 있었다. 관 속에 할머니는 몰라보게 야윈 얼굴로 수의를 입고 누워계셨다. 관 속에 누워있는 고인을 보는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볼 때마다 늘 복잡한 심정이 된다. 분명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는데 이상하게도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여서 너무 낯설다. 이미 영혼이 떠나버렸기 때문인가...... 그저 잠들어 있다기에는 너무 가짜 같은 마치 잘 만들어진 마네킹을 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확실한 건 내가 기억할 그 사람의 모습이 관 속에 누워 있는 그 모습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관 안에 누워 계신 할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관이 닫히고 또 그 관이 리무진 버스에 실릴 때 어머님과 시이모님은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렸다. 곧 이런 날이 올 것을 알고 있었고 생의 마지막은 침대에만 누워 계셨는데도 막상 관이 닫히는 순간이 오자 ‘마지막’, ‘영원한 이별’을 감지하며 감정이 북받쳐 올라오는 것 같다.

나는 할머니를 잘 모른다. 일찍이 과부가 되어 어린 사 남매를 혼자 힘으로 키울 수 없어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지내야 했다는 역경의 가족 역사를 건너 들었을 뿐이다. 그분의 일생이 어떠했는지, 가장 눈부신 순간은 언제였는지, 또 거동을 못하셨던 지난 3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자손들이 여기 이렇게 남아있다. 나의 시어머니, 내 남편과 나의 아이들도 모두 그녀가 남긴 자손들이다. 어려운 형편에 과부로 살아온 한평생, 얼마나 기구하고 쓸쓸하고 외로웠을까 싶지만 남겨진 자손들이 그녀의 삶은 인정받아 마땅함을 증명한다.

할머니 장례를 마치고 우리 식구는 미리 예약해둔 여행길에 올랐다. 동해에 있는 호텔 온천을 방문했는데 그날따라 목욕탕에 노모를 모시고 온 중년 여성들이 계속 내 눈에 들어왔다. 예순은 되어 보이는 한 노모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뒤뚱거리며 나이 든 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엄마에게 의지하듯 딸에게 몸을 맡긴 노모는 아기 같았고 물이 너무 뜨겁지는 않은지, 바닥이 너무 미끄럽지는 않은지 조심하며 살피는 딸은 영락없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늙으면 아이 된다’는 옛 속담이 말과 행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모양이다. 나이가 들며 점점 누군가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기와 똑같이 닮았다. 이 모든 게 돌아가는 과정인 것일까? 나이가 있는 사람의 죽음은 ‘돌아가셨다’는 표현을 쓰지만 나이가 어린 사람의 죽음에는 이런 말을 쓰지 않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까? ‘돌아가셨다’는 의미는 단순히 '원래로 돌아가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다' 이상의 종교적, 철학적 의미를 지닌 것 같아서 풀어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더 살다 보면 깨닫게 될까?

2022년 5월, 양가를 합쳐 마지막 (아이들의)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이제 4대가 함께 했던 순간이 더없이 귀한 추억이 되어버렸고 왕할머니는 백 살까지 사실 거라며 호언장담하던 우리 아이들의 가슴에 별 하나가 늘어났다. 나는 시외할머니의 영정 사진 앞에서 할머니가 남긴 자손들 곁에서 오손도손 재미나게 살겠노라 때늦은 약속과 다짐을 했다. 부디 평안히 돌아가시길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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