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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허당(江華虛堂)
06/13/22  

중학교 시절 친구들 7명이 죽을 때까지 서로 도우며 함께 살자고 결의를 맺었다. 이 세상에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 어디 있던가. 고등학교 진학할 때 4 명은 한 학교로 가고 3 명은 각자 다른 학교로 진학하면서 갈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어울려 놀았다. 그중 한 명은 일찍 세상을 떠나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또 한 친구는 한동안 소식이 끊겼다가 대학시절 만나게 되어 잠깐 다시 어울렸다. 그 친구는 경찰관이 되어 있었다. 전경 복무 후에 전역과 동시에 경찰관이 된 것이었다. 그 후로 몇 차례 더 만났으나 다시 소식이 끊겨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모른다.

나머지 5명 중 나를 포함한 4 명은 현재 미국에 살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4명 모두 LA 인근에 자리를 잡아 수시로 모이고, 서로 크고 작은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 즉 7명 중 1명은 세상을 떠났고, 1명은 연락두절이고, 4명은 미국 살고 1명만 한국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 한국 사는 친구는 친구들이 그립다며 일 년에 한 번은 미국에 와서 친구들과 한 달 정도를 함께 생활하다 돌아간다. 그 친구 덕분에 우리들은 어려서 한 약속을 실천하며 살게 되었다. 그리고 친구는 미국 사는 친구들이 고국을 방문할 때마다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있다. 나의 이번 고국 방문 시에도 새벽에 도착하는 나를 마중 나와 내 숙소까지 데려다 주었고, 5월 말에 미국에서 2명의 친구들이 고국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미국에서 온 친구들을 자신의 강화에 있는 세컨드 하우스로 2박3일 초대했다. 오늘은 이 친구 얘기를 해볼까 한다.

친구는 음식과 각종 음료를 잔뜩 준비했으며, 직접 요리도 하면서 우리를 지극정성으로 대접했다. 낮에는 마당에 그늘막을 설치하고 둘러 앉아 계속 먹고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웠고, 밤이면 집안에서 쉬지 않고 웃음꽃을 피웠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마구 쏟아내던 중 친구는 자신의 호를 허당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속으로 웃자고 하는 말이거니 했다. 왜냐하면 허당이란 '땅바닥이 움푹 패어서 다니다가 빠지기 쉬운 곳'을 가리키는 순수한 우리말이니까. 그때 한 친구가 한자어 허당(虛堂)을 생각하고 '집이 비어 있으니까 앞으로 계속 채우겠다는 뜻에서 그리 지었는가'하며 농을 건네니 친구가 말했다. '비어 있는 집이니 언제든지 누구든지 들려 편히 쉬었다 가라'는 뜻이며, 자신이 부족한 것이 많아 그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죽을 때까지 공부하겠다'는 의미라 했다.

친구의 얘기를 듣고 보니 친구는 실제로 그리 실천하며 살고 있었다. 매일 아침 남보다 일찍 일어나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학원으로 가 공부를 하고 있었다. 영어, 중국어, 일어를 계속 배우고 있었고, 시사반에도 들어 젊은이들과 함께 토론도 하고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살고 있었다. 평생 해오던 사업을 계속하면서 최근에 아들에게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서로 연락 없이 지내던 허당이 갑자기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1980년 12월의 어느 날, 당시 고3 담임을 맡아 학력고사 점수와 모의고사 점수를 토대로 대학 진학을 위해 골머리를 앓으며 학부모 상담을 할 때였다. 친구는 군대에 복무하면서 대학 진학을 위해 준비해왔고, 전역하자마자 본격적으로 공부를 했다며 자기 모의고사 점수와 학력고사 점수를 보여주면서 어느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좋은가 물었다. 나는 우리 학교에서 만든 배치표를 보여주면서 서울의 모 대학 지방 분교를 추천했다. 친구는 두말 않고 그 학교에 원서를 냈다. 친구는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고 대학 4년 내내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으며 그 대학 그 학과의 1회 졸업생이 되었다.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에 취직했고 부장까지 지낸 후에 퇴직하면서 자신이 근무하던 회사와 관련된 업무를 하는 개인 회사를 창업해서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앞에 얘기한 것처럼 친구는 미국 사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1년에 한 번은 꼭 미국을 방문해 오고 있다. 심지어 코로나19으로 여행이 불편했던 지난해에도 찾아와 한 달여를 보내고 간 바 있다.

나는 허당에게 말했다. 자네가 허당이듯이 이 집도 허당이니 앞으로 이 집을 강화허당이라고 부르자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집에 들려 쉬었다 갈지는 모르지만 허당의 뜻대로 강화허당을 찾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집이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자신의 배움에 대한 갈구를 채우기 위한 허당의 노력은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지리라 믿는다.

먼저 세상 떠난 친구는 어쩔 수 없지만 남은 친구들 중 연락이 안 되는 1명도 찾아 강화허당에서 함께 어린 시절을 얘기하며 활짝 웃는 날이 오기를 학수 고대(鶴首苦待)한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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