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06/13/22  

한국에 살다 보면 아줌마 혐오를 시도 때도 없이 경험하거나 목격하게 된다. 아줌마는 말귀를 못 알아듣고 운전을 못하고 공중도덕을 안 지키고 목소리가 크고 외모 관리도 하지 않는다는 편견도 심하고 그냥 "아줌마" 이 한마디에 수많은 것들을 내재하고 있는데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아줌마들이 카페에서 주문하려고 카운터에 서면 젊은 직원의 표정이나 말투가 묘하게 달라질 때가 있다. 분명 불친절하다고 하기에는 애매한데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리거나 말투에 영혼이 사라지거나 했던 말을 다시 할 때 짜증이 묻어 나오는 식이다. 너무 예민한 게 아닌가 싶어서 여러 번 비슷한 상황을 지켜봤지만 분명 동년배의 남성을 대할 때와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병원 의사들도, 건물 관리인이나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도 아줌마와는 별로 말을 섞고 싶어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아줌마를 응대할 때 얼마나 답답하고 곤란한 상황이 많았길래 이렇게까지 정색을 하는 걸까? 많은 경험을 통해 습득하고 어쩔 수 없이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것도 있겠지 하고 생각한다.

하물며 내 남편도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또 어떤 아줌마가 그래?”하는 뉘앙스로 대꾸하는 경우가 있으니 말하면 무엇하랴…… 가끔은 아줌마가 되어버린 아내를 앞에 두고 아줌마 비하 발언을 하기도 해서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부터 "아줌마"라는 호칭이 이토록 퇴색되어버린 걸까?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아줌마 같아", "아줌마스럽다"는 말은 혐오가 담긴 매우 부정적인 표현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줌마를 기피하고 여성들은 아줌마라고 불리는 것을 거부한다. 나만해도 결혼한 여성이니 아줌마라고 불리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아줌마라는 호칭이 영 달갑지 않다.

예전에 내가 어릴 때는 아줌마가 이토록 부정적인 호칭이 아니었다. 언니처럼 보이지 않는 여자는 누구나 아줌마라고 불렀다. 친구 엄마도 아줌마, 가게 주인도 아줌마, 식당 직원도 아줌마. 아줌마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봐도 아줌마는 아주머니를 낮추어 이르는 말이고 아주머니는 부모와 같은 항렬의 여자 혹은 남남끼리에서 결혼한 여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니 그리 나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요즘은 아줌마라는 호칭 대신 "이모"를 사용하는 것이 대세가 되어버렸고 어떻게 해서든지 아줌마라는 호칭을 피해 가고 싶은 것은 아줌마가 갖고 있는 좋지 못한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그래, 물론 있다. 몰상식하고 안하무인이고 교양 없고 천박한 아줌마들. 버스에서 스피커폰으로 고래고래 전화 통화를 하고 천연덕스럽게 몸을 들이밀며 새치기를 하고 운전도 못하면서 꼭 말도 안 되는 위험한 판단을 하고, 가족을 위한답시고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그런 아줌마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 아줌마가 어디 뭐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졌나? 절대 그럴 리 없다.

기본 질서를 모르고 예의 없는 아이가 그런 어른이 되고 또 결국 그런 아줌마가 된 것이다. 밖에 나가봐라. 무식하고 예의 없는 게 어디 아줌마뿐인가? 우리는 직장에서, 식당에서, 길거리에서, 대중교통 안에서 그런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며 살아간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어린이일 수도 있고, 극장에서 만난 청소년일 수도 있고, 지하철에서 만난 청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이가 어리면 조금 관대하게 '어리면 뭘 해도 예쁘니깐'하고 넘어가고 '젊으니 아직은 그럴 수 있지…… 덜 영글었으니깐, 잘 모르니깐' 하면서 넘어가 주기도 한다. 하지만 아줌마는? 어림도 없다. 마치 자동반사처럼 바로 '어휴…… 아줌마니깐 저러지……' 하며 눈흘김을 쏴주는 게 기본이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나이듦"을 "추함"과 동일시하는데 특히 외모에 있어서는 여성에게 그 잣대가 훨씬 엄격하다. 엄격하다 못해 과한 수준이라 가끔은 우리 사회의 "아줌마"에 대한 부지불식간의 혐오는 결국 나이 들고 아름답지 않은 여성을 향한 경멸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나이 드는 것도 서러운데 어째서 '내가 젊고 예뻤다면 이런 대접은 받지 않았을 텐데……' 하는 쓸데없는 생각까지 하게 만드는 걸까?

여자로 나이 드는 것이 꽤나 고달픈 일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중이다. 이상은 찐 아줌마의 넋두리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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