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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복지의 사각지대
04/23/18  

지병을 앓는 칠십팔 세의 아내가 날마다 고통을 호소했다. 돈이 없어 약을 살 수 없었던 여든 살의 남편은 아내를 살해한 뒤 경찰에 자수했다. 이 부부는 고가의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2011년 파산을 불렀다. 플로리다에 사는 노부부의 이야기이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이 처한 국민복지의 현주소이다.

 


의료비 부담이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의료보험으로 커버되지 않는 고가의 약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세계에서 약값이 제일 비싼 나라가 미국이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값이 열 배가 넘는 약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래서 약을 사기 위해 멕시코, 캐나다 국경을 넘어 다니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필자의 아버지는 십여 년 전부터 하루에 스무 알 정도의 약을 복용해오고 있다. 해가 갈수록 약에 대한 의존도는 심해졌다. 복용하는 약의 처방을 의사가 해줬다고는 하나 걱정이 되어 의사인 친구에게 보여주며 물으니 몇 가지 약은 안 먹어도 될 것 같고, 어떤 약을 먹으므로 생기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다른 약을 먹도록 배려한 것도 있다며 몇 개의 약들은 한 알을 반씩 나눠 먹어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의사가 처방한 것인데 무슨 소리냐며 때를 놓치지 않고 복용했다. 마치 약을 먹기 위해 사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아버지는 심장수술을 하고 심장박동기를 달았고 전립선 수술도 했고 백내장 수술도 했다. 모두 메디칼, 메디케어로 해결해 치료비는 물론 약값도 한 푼도 부담하지 않았다. 필자는 개인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었으나 특별히 병원에 갈 일이 없었기에 의료비와 약값에 대해서 무관심했다.
노부부에 관한 보도를 듣고 여기 저기 알아보니 관절염약 중의 일부를 비롯해 상당수의 약들은 의료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 제약회사를 인수한 투자회사들이 약값을 터무니없이 인상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62년 전 출시한 말라리아 기생충 감염 치료제를 생산하는 제약회사를 한 헤지펀드가 인수하면서 한 알에 13달러 50센트 하던 것을 750달러로 올렸다. 결핵치료제 30알을 500달러에서 무려 10,800달러로 인상했던 적도 있다.

 

 

약값이 이 정도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약을 개발하는데 드는 연구비 등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62년 전에 개발한 약이라면 이미 연구비나 약 개발에 투자한 돈은 회수했을 것이다. 제약회사를 인수한 사람이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황당한 인상을 획책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우는 국민의료보험이 민영이 아닌 국영이고 강제이기 때문에 국가가 약값을 실질적으로 통제한다. 이로 인하여 미국과 같이 터무니없이 약값을 인상하기는 제도적으로 힘들다. 민영보험체제인 미국의 경우는 보험사가 제약회사를 그리고 병원을 지배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보험사는 의료보험비를 비싸게 받고 자신들의 부담은 적게 하기 위한 편법들을 사용한다. 즉 약값의 버블화가 가능하다. 또 특정 질병의 경우는 대체할 수 있는 약을 구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해서 폭리를 취하기도 한다.

 

 

미국의 의료보험제도가 지금처럼 지속된다면 미국은 머지않아 국민복지, 의료복지 후진국으로 전락할 것이다. 국가가 의료업계에 계속 끌려 다닌다면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의료제도의 문제점들을 영원히 해결하지 못하고 그에 따라 의료사각지대에 놓이는 국민들은 늘어갈 것이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의료개혁을 감행해야 한다. 적어도 약값이 부담되어 살기 힘든 세상이 되지 않도록 행정부와 입법부가 모두 힘을 합쳐 새로운 의료보험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 가운데 한 가지 방법은 한국의 국민의료보험 체제를 도입해서 미국의 현실에 맞게 적용시키는 것이다. 제약회사나 의료업계의 돈벌이 수단이 되지 않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건강보험이나 의료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와 의회가 국민을 위해 과감한 정책을 입안하고 의결해서 추진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이미 의료업체의 달콤한 후원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정치자금의 상당부분을 지원하는 제약회사나 투자회사들의 눈치를 봐서는 지금과 같은 의료제도의 변혁을 도모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나서야 한다. 각 정당과 관련기관에 제도 개혁을 촉구하고 필요하다면 시민운동도 전개해야 한다.

 

 

약값이 없어 고통 속에 신음하다 죽어가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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