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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의 기적
06/20/22  

10여 년 전에 한국 사는 친구가 미국 출장길에 LA에 들렸다 간다면서 호텔을 예약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호텔을 예약해주었고, 그리피스 파크와 산 페드로 우정의 종각, 산타모니카 비치 등을 안내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친구와 소식을 주고받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부터 소식이 뜸해졌고, 다른 친구들의 소식에 의하면 친구가 심하게 다쳐서 거동이 불편하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해 고국 방문길에 병상에서 일어난 친구를 만났다. 식사를 함께하고 모교를 방문하는데 동행했다. 예전의 씩씩한 모습과 달리 걸음걸이가 많이 불편해 보였다. 바로 이 친구가 이번 나의 고국 방문 일정에 맞춰 울릉도 여행을 기획했다.

코로나 방역대책의 일환으로 정부가 규제했던 여행이 자유롭게 풀린 탓으로 발 묶였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울릉도는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실제 울릉도 주민은 9천 명이 안 된다는데 하루에 만여 명의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오니 울릉도 전역이 사람들로 가득차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서는 방 얻기도 힘들고 식당에 앉아 밥먹기도 힘든 실정이었다.

가이드가 몇 시에 어디 가서 밥 먹고 몇 시까지 오라고 했다. 그 시간에 맞춰가면 버스에 타도록 했고, 운전기사는 몇 군데 돌아보게 하고 다시 주차장으로 데려다 주고 또 가이드가 식당에서 밥먹고 다시 또 모이라 했다. 자라는 곳에서 자고 먹으라는데서 먹고 모이라는 곳에 모여 이동하면서 울릉도를 구경했다. 주마간산(走馬看山)식 여행일 수밖에 없었다. 점심과 저녁 식사 비용은 여행경비에 포함되어 있고, 저녁 한 끼는 자유식이며 그 비용은 여행객들의 몫이었다. 따라서 2박3일 일정 중 두 번의 저녁식사는 여행객들이 자율적으로 해야 했다.

울릉도에 도착하자마자 점심 먹고 울릉도 일주를 했다. 버스를 타고 한 바퀴 돌면서 곳곳에 볼만한 것을 20여 분에서 30분 정도 둘러보는 식이었다. 그리고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다. 우리 8명은 일단 그 유명한 독도 새우를 먹기로 했다. 8명이 한 접시12만원 하는 회를 두 접시 시키고 1kg에 17만원하는 독도새우를 시켰다. 그 식당은 새우만 먹겠다는 사람은 입장조차 시키지 않았다. 반드시 회를 한 접시 시켜야 새우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우리는 일찍 갔기에 망정이지 늦게 온 사람들은 자리가 없어 아예 입장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새우 1kg이 16마리에 불과했다. 그것도 크기가 작아 껍질을 까고 새우 머리를 잘라내면 그 크기가 새끼 손가락만한 것이었다. 잘라낸 머리 부분은 튀겨 주어 바삭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지만 나는 한 마리에 만원이 넘는 새우를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친구들이 하나라도 더 먹게 한 점도 먹지 않았다. 그 대신 회를 배불리 먹었다.

4월에 예약한 여행이었음에도 울릉도의 상권이 밀집해 있는 저동이나 도동의 숙소를 잡지 못해 우리 일행 8명은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한 펜션에서 이틀을 자야했다. 두 명이 한 방을 사용하도록 돼 있는 숙소는 바닥에 요를 깔고 자야했지만 두 명이 사용하기 넉넉해서 큰 불편이 없었다. 다만 세면대에서 사용한 물이 관로를 통해 하수구로 빠지지 않고 그대로 바닥으로 쏟아져 나와 바닥의 배수구를 통해 하수구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 날에는 봉래폭포와 전망대를 다녀와 점심을 먹었고, 독도가기 전까지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우리는 케이블카를 탔고, 울릉도의 풍광을 즐겼다. 드디어 독도로 가는 배에 승선했다. 출발하면서 선장이 말했다. 아직도 독도에 입도할지 여부를 알 수 없다. 독도 근처에 가보고 입도 가능여부를 판단해서 알려주겠노라고 했다. 그만큼 독도 근해의 파도가 거칠어 예측이 불가하다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입도할 수 있었다. 20분 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태극기를 준비해온 사람들, 치마저고리를 입고 태극기를 흔드는 사람들, 애국가를 큰 소리로 부르는 젊은이들. 독도는 우리 땅이라며 힘차게 외치는 사람들, 독도가 주는 감동이 흘러넘쳤다. 한국인이 갖는 독도에 대한 감정은 애국심 말고는 다른 그 어떤 말로도 표현이 불가할 것이다.

마지막날 아침이 밝았다. 9시에 떠나는 배를 타기 위해 숙소로 버스가 6시 30분까지 오기로 되어 있었다. 이날이 일요일이었던지라 우리는 버스 오기 30분 전쯤 주일 예배(미사)를 드리기 위해 한 방에 모였다. 일행들 가운데 장로가 2사람, 성공회신부가 한 사람 있어 큰 불편함 없이 예배를 드릴 수가 있었다.

그때 거동이 불편한 친구가 말했다. 자기가 잔 방은 이 방의 반쯤 되는 좁은 방이라면서 둘이 누우면 틈이 그리 많지 않아서 몹시 불편했노라고 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우리 방은 물이 하수관으로 나가지 않고 바닥으로 직접 떨어진 후에 하수구로 나가 놀랐다고 얘기했다. 그때 친구가 말했다. “난 방이 좁아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적을 경험했다”면서 그동안 자고 난 뒤에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서 자리에서 일어나기 힘들었는데 어제, 오늘 나 혼자 일어났다. 이것이 기적 아니면 무엇이 기적이냐"고 물었다.

우리는 친구가 잠자리에서 혼자 일어난 것이 그동안의 치유 효과 때문인지 아니면 친구의 말대로 기적이 일어난 것인지 알 길이 없었지만 모두 박수를 치며 축하했다.

울릉도와 독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걷다 보니 그의 몸에 기적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하긴 우리들이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고 지나치는 기적이 하나둘이겠는가. 어쩌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자체가 기적일지도 모르겠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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