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씻기며
06/20/22  

막내가 발을 다쳤다. 수영장 샤워실에서 나오다가 뒤따라 나오던 아이가 문을 확 여는 바람에 문 모서리에 긁히며 피부가 찢어졌다. 병원에 데려가니 꿰매기에는 애매한데 상처가 좀 깊어서 2주 정도 붕대를 해야 하고 물이 닿으면 안 된다고 했다.

난감했다. 애 넷을 키우는 동안 2주 동안 샤워를 못할 정도로 다친 적은 처음이었다. 30도를 육박하는 초여름, 매일 땀 흘리는 아이를 안 씻길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발에 랩을 씌우고 그 위에 비닐을 씌우고 후딱 머리를 감기고 몸은 대충 씻겼다. 금방 씻기기는 했지만 씻는 자세도 좀 불편하고 엄마가 재미있게 해 준 것도 전혀 없는데 아이는 웬일인지 몹시 신이 나 있었다. 아직은 기분이 좋으면 주체가 안 되는 순수한 막내는 샤워 시간을 무슨 놀이 시간이라도 되느냐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매일 학교만 다녀오면 "엄마, 샤워 언제 해?" 하며 나를 쫓아다녔다. 그렇게 삼일째 되던 날 아이에게 "엄마가 씻겨주는 거 좋아?" 했더니 "응. 엄청 오랫동안 엄마랑 샤워를 못했잖아. 2년 넘었을 걸?" 한다. 아이가 2년이라고 했지만 실은 3-4년은 족히 되었을 것이다.

그랬다. 막내는 네 명의 아이들 중 가장 이른 나이에 엄마 손에서 벗어났다. 아이의 성장 발달과 전혀 상관없이 내 의지였다. 나는 아마 하루라도 빨리 끝내고 싶었을 거다. 올망졸망 애를 넷이나 낳으면서 쉴 틈 없이 거의 10년 동안 아이들을 씻겨왔으니깐 그럴 만도 하지 않나? 매일 서너 명의 아이들을 한꺼번에 씻기는 일은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니다. 10년이면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욕구가 하늘을 치솟을 때 그 당시 한참 인형에게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는데 심취되어있던 초등학교 2학년 딸을 꼬셨다. 동생과 같이 샤워하며 씻겨주라고. 처음에는 모두가 행복했다. 딸도 혼자 씻는 것보다 재미있는지 샤워할 때면 잔뜩 신이 났다. 막내도 불친절한 엄마보다는 누나가 나았는지 제법 누나를 잘 따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샤워실에서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어느 날은 딸이 "엄마, 나 오늘 혼자 씻으면 안 돼?"하고 묻는 날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날이 늘어갔다. 평화는 늘 오래가지 않는다.

그런데 며칠 전 막내가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다가 말고 말했다.
"엄마, 이건 비밀인데... 절대로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알았지? 있잖아... 누나가 옛날에 나 샤워시킬 때 내 엉덩이 세게 때렸어."
"네가 장난치거나 말을 안 들었어?"
"아니 그냥 때렸어. 엄청 아팠어."
"근데 왜 엄마한테 말 안 했어?"
"누나가 엄마한테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했어."

누나가 말하지 말란다고 말을 하지 않은 막내도 짠했지만 (어린이집 선생님한테 학대당하고 집에 가서 말하지 않는 아이처럼) 그 어린것이 동생 씻기는 게 얼마나 버겁고 힘들었으면 엉덩이를 때렸을까 싶어서 그때의 딸에게 몹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도 힘들어서 그만하고 싶었던 일을 결국 초등학생 딸에게 떠넘긴 셈이니까 엄마로서 자격 미달인 것도 인정한다. 그리고 그때의 부작용인가... 한동안 동생 돌보느라 고생한 탓인가 초등학교 6학년인 우리 딸은 동생 돌보는 일을 제일 싫어하는 것 같다.

암튼 막내를 제외하고 다른 아이들은 부모에게 해방되어 혼자 샤워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쾌재를 부르며 좋아했다. 씻는 둥 마는 둥 물만 틀어놓고 뭘 하는지 5분도 안되어서 샤워 다했다며 물을 줄줄 흘리며 나올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가... 나라도 그랬을 거다. 나는 6학년 때까지 엄마가 나를 씻겨줬는데 때를 밀던 엄마의 짜증 수치가 가파르게 올라가면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느라 몹시 피곤했던 기억이다. 하지만 우리 집 막내는 엄마가 씻겨주는 것이 더 좋다고 하니 부모 노릇 쉽지 않구나.

막내의 다친 발에 상처가 아물고 딱지가 생겨서 오늘부터 샤워를 해도 괜찮다고 했지만 그리도 좋아하니 앞으로 종종 막내를 씻겨줘야겠다. 그러다 보면 얼마 안 가 혼자 씻겠다고 엄마 나가라고 하겠지. 그리고 딸에게도 그때 엄마 대신 동생을 씻겨줘서 고마웠다고 말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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