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산고택(晩山古宅)
06/27/22  

대학 동창생들과 만산고택(晩山古宅)을 찾았다.

솟을대문 들어서 마당을 지나 사랑채 대청마루 앞에 서서 인사하니 만산고택 주인장 강백기 선생과 부인께서 반겨주셨다.

만산고택은 강백기 선생의 4대조 강용 선생이 1878년(고종 15년)에 건립한 가옥으로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에 있다. 만산은 영릉참봉, 천릉도감 감조관을 거쳐 통정대부에 올라 당상관인 중추원 의관을 지냈다. 그러나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망미대(望美臺)를 쌓고 망국고신(亡國孤臣)의 한을 달래며 지냈다. 망미대는 만산고택 담장 너머로 보이는 곳에 있다. 
  
우리 전통 건축물들은 고유의 이름을 갖고 있으며, 그 이름을 적은 편액을 정면에 걸어 놓았다. 왕궁이나 서원, 사찰은 물론 전통 사대부의 건물에는 수준 높은 붓글씨로 이름을 새긴 편액이 걸려 있다. 편액은 '건물의 문 위 이마 부분에 써놓은 글씨'라는 뜻이다. 다른 말로는 현판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글씨를 걸어 놓은 널빤지'라는 뜻이다.
  
만산고택에는 다른 고택들에 비해 유난히 편액이 많았다. 한 건물에 하나만 있지 않고 여러 개가 있었다. 모두 다 역사적 가치가 담긴 유명한 사람들의 친필이다. 물론 모두 판본이다. 편액의 원본은 모두 연세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서실에는 書室(서실)과 翰墨淸緣(한묵청연)이 있다. '서실'은 성현의 글을 읽는 방이라는 뜻이고, 한은 붓이고, 묵은 먹을 가리키니 한묵은 붓과 먹으로 이루어지는 글씨를 쓰거나 글 짓는 것을 이른다. 청연은 맑고 깨끗한 인연을 말한다. 따라서 한묵청연이란 '공부하다 만난 맑고 깨끗한 인연을 소중히 여기라'는 뜻으로 풀이하면 어떨까 싶다. 한묵청연은 영친왕이 8살 때 썼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둔다.

사랑채에는 오른쪽에서부터 晩山(만산), 靖窩(정와), 存養齋(존양재), 此君軒(차군헌)이 걸려 있다. 대원군이 작호하고 직접 써서 하사한 '晩山'은 더디된 산, 대기만성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어쩌면 대원군이 자신의 인생을 빗대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평생 힘없는 왕족으로 살다가 나이들어 아들이 왕이 되어 세도를 누리게 내었으니 말이다. ‘靖窩’는 조용하고 편안한 집이라는 뜻이며, 만산이 낙향하며 지은 아호다. 정(靖)은 도연명의 시호에서 빌려온 것으로 보인다. 도연명이 관직을 버리고 초야에 묻혀 사는 것을 보고 그에게 나라에서 정절(靖節)이라는 시호를 내렸는데, 그 '정'자를 빌려와 조용하고 편안하다는 의미로 붙인 것이 아닌가 싶다. 와(窩)는 움집을 가리키는 말이기는 하나 여기서는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의미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대 서예가로 이름을 떨치던 강벽원의 글씨이다.  

본심을 잃지 않도록 착한 마음을 기른다는 의미의 '存養齋'는 3.1운동을 이끈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분인 오세창의 글씨다. ‘此君軒’은 조선 후기 서예가 권동수의 글씨로 ‘차군(此君)’은 대나무를 예스럽게 부르는 말이다. 대나무의 곧음을 강용 선생의 강직함에 빗댄 것으로 보인다.    
  
별당인 칠류헌 상단의 七柳軒은 오세창의 글씨로 '일곱 그루 버드나무가 있는 집'을 말한다. 七柳는 도연명의 五柳(오류)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도연명은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집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고 스스로를 오류거사라고 칭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다. 하단 오른쪽의 魚躍海中天(어약해중천)은 '물고기가 바다에서 하늘로 뛰어 오른다'는 뜻이며 중국 송대의 유학자 주희의 글씨이다. 四勿齋(사물재)는 '예가 아니면 보고 듣지도 말고, 말도 행동도 하지 말라'는 네 가지 금지덕목을 실천하는 집이라는 뜻으로 논어에서 빌려왔다. 글은 옥람 한일동이 썼다.  白石山房(백석산방)은 태백산의 조용히 수양하는 곳이라는 의미이며 백석은 만산고택에서 바라 보이는 태백산을 가리킨다. 글씨는 영친왕에게 서예를 가르친 해강 김규진이 썼다.

이런 편액들 못지않게 마음을 끄는 것은 자연스러운 정취의 정원이었다. 손질을 많이 한 인위적인 정원과 달리 자연 그대로 자라도록 한 안주인의 정성과 마음 씀씀이가 엿보였다. 담쟁이가 담을 넘고 수풀이 안채와 대문 옆에 우거져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안주인께서 손수 차려주신 아침상을 마주하고 만산고택이 거기 그대로 담겨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된장찌개, 명이나물 장아찌, 곰치쌈, 생선구이, 맛나게 먹다가 만산고택에서 특별히 담근 약주가 없는가 여쭈니 안주인께서 흔쾌히 5년 묵은 ‘마가목 열매주’를 독째 들고 오셨다. 한 모금 적시니 마가목 열매의 특이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지며 만산고택의 풍취가 몸 전체로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떠나는 우리를 위해 대문 밖까지 나와 손 흔드는 두 분의 모습이 만산고택 사랑채 앞마당에 예쁘게 피어있던 보랏빛 달리아와 함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떠오르고 있다.
 
우리가 머무르는 동안 정성으로 보살펴 주신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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