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1.5세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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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싶지가 않아서
06/27/22  

딸이 자발적으로 교내 상담 신청을 하고 이틀 전 상담 선생님을 만나고 왔다고 한다. 상담 주제는 "어떻게 하면 동생들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였고 상담 선생님은 보드게임을 하면서 가까워지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가족 구성원을 이야기하면서 오빠 이야기도 했는데 선생님이 "00야, 선생님이 너희 오빠 이야기를 아는데 왜 넌 오빠가 살아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니?"라고 물으셨고 딸은 "그냥 잊고 싶지가 않아서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이들 학기 초마다 있는 가족 소개, 가족 그리기에 큰 아이의 존재가 쏙 빠져버릴까 불안했는데 딸은 이렇게 오빠를 이야기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나에게도 항상 있는 일이다. 누구든지 처음 만나면 “아이 있으세요?” “아이가 몇이에요?” “아이들 몇 살이에요?”라고 흔한 대화를 시작하고 뭐 대단히 궁금해서라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대화의 흐름처럼 결국 자녀에 대한 이야기가 거론되기 쉽다. 하지만 이때마다 솔직히 뭐라고 답해야 하나 난감하다. 큰 아들이 너무 빨리 하늘로 떠난 것은 슬픈 일이지만 부끄럽거나 쉬쉬하며 비밀로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가볍게 가족관계를 묻는 질문에 "아이가 하늘에 있다."와 같은 답을 해버리면 분위기를 단번에 갑분싸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그들이 듣고 싶은 답은 이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화의 흐름은 하하호호 어머 큰애가 중3이면 지금 한창 사춘기겠네요? 아이고 말도 마세요. 애랑 매일 전쟁이라 미칠 지경입니다. 다 그렇게 큰다니 조금만 참으세요. 곧 지나가겠지요. 네네. 호호호 아마도 이런 것이었을 테니깐... 

며칠 전에는 정말 오랜만에 초등학교 동창 친구 둘을 만났다. 한 친구는 한국 들어와서 한번 만나고 한동안 연락도 잘 못하다가 정말 오랜만에 만난 것이다. 그동안 못다 한 수다가 한바탕 벌어졌는데 이야기 중에 또 그 순간이 오고야 만 것이다. 친구가 "너 큰 애는 이제 고등학생인가?" 하는데 "아... 몰랐구나. 사실 우리 아이 재작년에 하늘로 갔어."라고 대답하며 5초간 침묵. 같이 온 다른 친구가 소식을 전했겠지 싶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지혜로운 친구였기에 자연스럽게 다음 대화를 이어나갔고 눈물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태는 막았지만 그래도 분명 친구가 많이 당황했을 것이다. 

"아이는 넷이고 큰 아이는 유학 갔습니다."하고 끝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하지만 그러면 또 묻겠지? 어머~ 유학은 어디로 갔어요? 미국이요? 호주요? 요즘은 뉴질랜드도 많이 가던데... 아... 실은 좀 멀리 하늘로 갔습니다. 그러면 역시 되돌이킬 수 없는 분위기가 되겠지? 대답해야 하는 나보다도 물어본 사람이 더 어쩔 줄 몰라할 것이 눈에 훤하다.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정해진 공식 코드 같은 게 있으면 좋지 않을까? 사별은 A16, 이혼은 A21, 자녀 잃은 부모는 B1 같은 코드를 밝히면 더 이상 질문하거나 답변하지 않아도 되는...... 

일곱 살 셋째 딸을 하늘로 보내고 방송에 출연하며 얼굴이 알려진 분이 말했다. 유명해지고 나니 좋은 점은 이제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녀의 수나 나이를 말하며 난감할 일이 확 줄어서 편해졌다는 것이었다. 나는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가 갔다. 온 세상 사람들이 내가 자식 잃은 부모라는 것을 알게 되면 차라리 편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말이다. 

딸에게 물었다. "상담 선생님께 네가 뭐라고 했길래 선생님이 오빠가 살아있는 것처럼 말했다고 했니?" 

딸이 대답했다. "오빠 중3이라고 했더니..." 그리고 딸이 이렇게 말을 잇는다. "오빤 천국에서 중3 다니고 있을 테니 그렇게 말해도 되잖아? 그치?" 하고 웃으며 말하는데 나는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딸아이의 믿음이 확고해서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눈물을 참는 데는 실패했다. 중1에 하늘로 떠난 오빠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잊고 싶지 않았다며 "오빠는 중3"이라고 말하는 우리 딸이 가엽고 중3이 되어본 적 없는 우리 아들이 그리워서 한참을 숨죽여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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