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홈으로 발행인 칼럼
청와대
07/05/22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지난 월요일 오후, 청와대에 다녀왔다. 별로 내키지 않는 걸음이었으나 선배의 거듭되는 제안을 거부하기 어려워 이뤄진 약속이었다.

우리는 경복궁 3번 출구에서 만났다. 각자 우산을 쓰고 걸었다. 차 타고 지나가기는 했어도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던 길이다.

버스 정류장 둘을 지나 우회전하니 도로 양쪽에 버스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청와대 관람객들을 싣고 온 버스들이다.

청와대 정문 왼편에 대형 텐트가 쳐있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방문객들을 한 사람 한 사람 확인하고 입장을 위한 비표를 나눠주고 있었다.

고려 숙종 때 후원으로 사용되던 이궁(離宮)이 지금의 청와대 터에 있었다. 그로부터 670여 년이 지나 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의 후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78년이 지나는 동안 12 명의 대통령이 집무를 하고 생활했다.

정부 수립 후 이승만 대통령은 ‘경무대’라고 명명했으며, 윤보선 대통령이 청와대로 개명했다. 청와대란 명칭은 본관 건물이 청기와로 덮어 있는 데서 유래했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집무실・접견실・회의실 등이 있는 본관, 영빈관, 대통령관저, 수궁 터, 상춘재, 녹지원, 대통령비서실, 춘추관, 무궁화동산, 효자동사랑방, 칠궁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청와대에는 1960년대~2000년대 지은 전통 한옥과 현대 한옥, 현대 건물들이 아름다운 정원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대한민국의 근, 현대사의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곳이다. 그러나 이곳에 살았던 12명의 대통령은 모두 말년이 비참했다.

국부로 숭상되던 1, 2, 3대 이승만은 망명길에 올라야 했고, 4대 윤보선은 5.16 군사정변에 의해 권력을 장악한 군사 세력에 의해 임기를 못 채우고 하야해야 했다. 이어서 총칼을 앞세워 5~9대 대통령을 지낸 박정희는 술자리에서 부하의 총탄을 맞고 비명에 가야 했다. 10대 최규하는 12·12 쿠테타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등 신군부의 압력으로 8개월 만에 사임해야 했다. 총칼로 11, 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과 13대 노태우는 하야 후 감옥에 가야 했다. 14대 김영삼은 아들이 수감되는 수모를 겪었고, 15대 김대중은 두 아들과 측근들이 감옥살이해야 했다. 16대 노무현은 가족과 측근들의 비리로 수사 받던 중 사저 뒷산에서 투신자살했다. 17대 대통령 이명박은 병으로 잠시 자택에 머물고 있으나 수감생활 중이고, 18대 박근혜는 탄핵되어 권좌에서 물러나 수감생활 중 사면으로 풀려난 바 있다. 금년 5월 초에 퇴임한 19대 문재인은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청와대에 살던 사람들의 말로가 좋지 않았기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 선배는 어린 학생을 데리고 온 초등학교 선생님처럼 이리저리로 안내하며 하나하나 상세하게 설명을 했다. 그리고 여기 서라 저기 서라 하면서 사진을 찍어 주며 계속 소감을 물었다. 마치수학여행 다녀온 학생들에게 기행문 써내라 재촉하는 선생님 같았다. 난 내 생각에 골몰하느라 뭐라 답변을 할 수가 없었다.

한 바퀴 돈 후에 출입 기자들이 취재 등을 위해 상주하던 춘추관 옆으로 난 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경사가 매우 심한 길이다. 숨을 할딱거리며 힘들게 올랐다. 그러나 청와대 안을 걸을 때보다는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커다란 길이 끝나고 그동안 폐쇄되어 주로 군인들이 걸었을 거라 짐작되는 길이 나왔다. 문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떠나기 전에 등산로로 개방했다는 바로 그 길이다. 걷기 좋게 잘 단장이 되어 있었다. 곳곳에 순찰이라고 쓴 완장을 찬 사람들이 걷는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서 있었으나 비가 내린 탓인지 걷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리가 걷는 동안 만난 사람은 완장 찬 사람들 말고는 서너 명에 불과했다.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다. 산길을 걷는 동안에도 선배는 묻기를 그치지 않았다. 어떠냐고 이 길을 걸으며 무엇을 느끼냐고 여러 번 물었다. ‘좋다’는 짧은 내 답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인 줄 알면서도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선배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새로 당선된 대통령이라도 청와대에서 집무하거나 살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았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인지 궁금하다. ‘청와대면 어떻고 용산이면 어떤가? 사리사욕을 버리고 일부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면 되지 않겠는가’라는 멋진 답변을 하는 분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