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04/23/18  
미국에서 출생한 셋째, 넷째와 함께 고국을 방문했다. 몇 해 전부터 벼르던 일이었다.
태어난 후 한 번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한국은 낯선 나라였을 것이다. 아무리 아버지의 사촌 형제들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처음으로 만난 친척들 역시 낯선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도착한 다음날 찾은 선영은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생소한 한국의 문화 가운데 하나였음에 분명하다.
 
 
일정 가운데 고교 동창 모임이 있어 나갔다. 그 시간, 아이들도 그들만의 시각으로 한국을 느꼈을 것이다. 졸업 후 처음 만난 친구는 평생을 직장생활만 하다 은퇴하고 지금은 건설 현장에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춘천에 있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태우고 출퇴근한다고 했다. 10인 1조로 움직이는데, 자기가 속한 조는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9명이 중국에서 온 교포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힘든 노동일을 하려들지 않기 때문에 그 자리를 중국 교포들이 채우고 있다며, 그마저도 원한다고 누구에게나 일자리가 돌아가진 않는다고도 했다.
 
 
친구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가 방문한 식당의 종업원들도 대부분 중국 교포거나 외국인들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일하는 중국 교포나 외국인들도 한국 사람들이 일하려고 하지 않는 바로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하긴 한국 내 3D(dangerous, difficult, dirty) 직종의 대부분이 중국 교포나 동남아 저소득 국가 출신들에 의해 채워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고국땅을 떠나온 것처럼‘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 땅을 밟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위험하고 힘들고 지저분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리라. 마치 우리가 미국 생활을 시작했던 처음의 그 모습처럼.
 
 
그러고 보면 그들의 모습은 미국 내 이민자들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 주류사회의 구성원들이 기피하는 일을 하며, 일반적으로 사회 평균 소득에도 미치지 못한 보수를 받으며 미래에 대한 꿈을 키운다. 일신의 안위보다는 가족을 먼저 생각하며 어렵고 힘들더라도 묵묵히 참아낸다. 한국에서 몇 년 일해 모은 돈을 가지고 귀국하면 가족과 더불어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게 될 것이라는 기대로 저임금과 눈에 보이지 않는, 혹은 노골적인 차별을 이겨낸다.
 
 
이제 한국도 더 이상 단일민족 사회가 아니다. 지금의 한국 사회 곳곳에는 이민자 혹은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들어온 저소득 국가 출신들이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한국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이 아니면 이제 한국의 산업은 일정 부분 마비될 수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더 이상 그들에게 이방인이란 이름표를 달게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한국 사회 발전에 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사회적인 제도와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들에게 한국은 영원한 외국, 그래서 돈만 모으면 태어난 나라로 돌아갈 것이라는 마음이 들지 않도록 한국 사회가 포용해야 한다.
 
 
한국은 이미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 고령화는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오래 산다는 의미만 가진 것이 아니다. 고령화가 진전될수록 생산가능 인구의 수는 줄고 그에 따라 노동력도 고령화되어 생산성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경제 성장은 둔화되고 연금 등의 공적 부담은 늘어나는 등 사회 경제적인 이슈에 노출되게 된다.
 
 
여기에 더해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도 문제이다. 현재 한국은 국민소득 2만 달러 이상, 인구 5천만 명 이상인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는 나라는 미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영국등 모두 7개국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국의 인구는 2030년 5,216만 명을 정점으로 감소세에 접어들어 2045년에는 4,000만 명대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인구는 경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유엔 미래 보고서 2040’은‘인구 감소가 이미 시작된 선진국은 예외 없이 국력 감소가 나타났다.’고 경고한다.
 
 
고령화·저출산 문제는 노동생산 인구 감소의 원인이다. 그리고 이민자 포용정책은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있다. 즉 이민자들에게 그들의 문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사회가 제공하는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이민자들에게도 균등한 기회를 제공해 자신은 물론 사회와 국가 발전에 일조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제 한국도 보다 전향적인 이민 정책을 검토할 시기이다. 이민자들이 3D 직종에서 벗어나 한국 사회를 위해 그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사회 전반의 변화와 개혁을 모색할 때이다.
이민자들이 느끼는 한국에 대한 낯섬이 내 아이들이 느꼈을 낯섬과는 분명 다른 것이겠지만, 이민자들과 내 아이들에게 익숙한 것들이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의 수립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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