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걱정
07/11/22  

우리집 아이들은 하나같이 작고 말랐다. 남편이 퇴근길에 두 손 무겁게 뭘 사 갖고 와도 누구 하나 신나서 달려 나오는 사람이 없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야식 먹을까? 치킨 먹을까?"와 같은 가슴 설레는(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말을 해도 아이들의 미지근한 반응에 김이 새고 만다.

어제는 명장이 만들었다는 유명한 베이커리에서 줄까지 서서 빵을 사다 줬지만 역시나 반응은 시큰둥. 그나마 아이들이 서로 먹겠다며 관심을 보인 빵은 맛있어 보이는 베이커리의 시그니처 빵들이 아니고 밋밋한 바게트, 소금빵, 소보로 같은 것들이었다. 전형적인 마른 아이들의 공통점은 살찌는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맛있다면서도 더 먹지 않는다, 과일을 좋아한다, 식사를 오래 한다.

이러니 무슨 살이 찌겠나 싶어서 한숨이 난다. 첫째가 미취학 아동일 때 또래보다 작고 말라서 걱정을 하니 주치의가 버터에 밥을 비벼 먹여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하지만 그것도 당연히 실패. 첫째는 버터밥을 좋아하지 않았다. 버터밥을 좋아할 정도면 보통 말랐다며 걱정할 리가 없지 않나?

하긴 나도 어려서는 먹는 게 별로 즐겁지 않았었다. 즐겁기는커녕 오히려 스트레스였다. 먹기 싫은 걸 먹으라며 엄마가 무서운 표정을 지으면 지금까지 먹은 음식도 도로 올라올 것만 같았다. "밥알을 새고 있냐... 밥상에서 기도하냐... 뭘 그렇게 맛없게 먹냐"라고 밥상에서 혼이 날 때면 식사 시간이 괴롭고 밥은 더 맛이 없었다. 왜 그렇게 먹는 게 싫었을까... 지금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본격적으로 2차 성징이 시작되었던 중3 전까지는 먹는데 큰 관심이 없었다.

난생처음으로 떠먹는 요거트를 먹었던 일이 기억난다. 떠먹는 요거트는 내가 국민학생일 때 처음 등장했으나 편식쟁이였던 나에게는 당연히 환대 받지 못했다. 성당 여름 성경학교에서 간식으로 나왔을 때도 고개를 저으며 사양했었고 엄마가 몇 번 사 왔을 때도 오빠만 맛있게 먹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6학년 때인가 수영장에서 어느 어른이 내게 복숭아 맛 떠먹는 요거트를 사줬을 때 그때 처음으로 제대로 먹게 되었다. 그때 그 어른이 친구 엄마였는지 엄마의 친구였는지 전혀 기억이 없지만 단둘이 수영장 휴게실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었고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분이 내게 요거트를 사주셨다. 나는 어린이였지만 6학년이면 눈치를 볼 나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그 요거트를 다 먹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아주 조금씩 마치 약을 먹듯이 입에 넣고 삼키기를 몇 차례, 그러다가 요거트 반 통 정도를 비웠을 때 이상하게 꽤 맛있게 느껴졌다. 그날 처음으로 요거트가 생각보다 달고 맛있다는 사실을 안 이후부터는 없어서 못 먹었지 늘 맛있게 먹었다.

아무튼 지금의 나는 어떤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기 때문에 내가 편식쟁이에 소식가였다는 사실은 역사 속에 사라지고 말았다. 바나나 우유 한 통, 롯데리아 새우버거 하나를 혼자 다 먹지 못했던 내가, 지지리도 편식이 심했던 내가... 어느덧 이렇게 후덕한 중년이 되었으니 어쩌면 우리 아이들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남편도 내게 걱정도 팔자라며 먹는 걸로 아이들에게 잔소리하지 말라고 누누이 말하지만 그래도 내 새끼 입으로 뭐 하나 더 들어가야 안심이 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모든 엄마들의 공통점이다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싹 비운 밥공기를 보면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이런 게 "너 먹는 모습만 봐도 나는 배가 부르다."같은 걸까? 그러나 실상은 나만 잘 먹어서 내 배만 불러오고 아이들은 빼짝 말랐으니 이것 참 걱정이네. 누구는 너무 먹어서, 누구는 너무 안 먹어서... 이런 걸로 걱정을 하고 있다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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