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좋은 나라
07/18/22  

한국에 머무는 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물었다. 미국과 한국 어디가 살기 좋은가? 나처럼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왜냐하면 어느 곳이나 불편함이 없었고 설령 많은 사람들이 불편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몇 가지도 나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교통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LA에서는 문밖을 나갈 때면 으레 자동차 키부터 찾는다. 동네 산책을 할 때 빼고는 차 없이 다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이 점을 좋다고 하는 사람들은 싼 값에 어느 곳으로든 이동이 편리하다고 할 것이나, 계단을 오르내리고 많은 사람들과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부딪히며 다니는 것을 불편해 하는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나는 많이 걸을 수 있기에 이 점을 장점이라 여겼다. 집에서 8분에서 10분 정도 걸어야 하고 환승 시에는 5분 이상 또 걸어야 함에도 지하철을 많이 이용했다. 그러나 서울에서 한 달 반 정도 머물다 온 다리가 불편한 내 친구는 지하철과 버스 타고 다니면서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LA에서는 어디를 가든 자기 차를 타고 가서 주차 후에 잠시 걸으면 목적지에 갈 수 있으니까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았는데 한국에서는 차가 없이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다 보니 자신의 장애를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이 점은 한국에 머무는 동안에도 친구가 자동차를 갖는 순간 해소되는 불편이기에 큰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곳이 살기 좋은가 묻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답을 하지 않아도 별 문제 없이 다음 대화로 넘어갔다. 그러나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한국이 참 살기 좋아졌다고 말했다. 세계 그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선진문화국이 되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많은 곳을 여행했는데 그 어떤 곳에서도 먹고 자고 이동하는데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그 어느 나라나 도시를 여행할 때보다 더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느꼈다. 경상도나 충청도의 아주 작은 마을이나, 사람들이 북적이는 관광 도시, 그 어느 곳에서도 쾌적함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화장실 문화는 세계 최고라고 생각한다. 시민의식도 선진국임이 확실했다. 과거에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던 그런 모습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식당이나 찻집에서도 과거처럼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남들에게 들리지 않게 작은 소리로 얘기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고, 10여 명 가까운 단체 손님들의 경우도 어느 한 사람의 목소리가 커지면 손을 입에 대고 소리를 낮추라는 신호를 보내는 사람들을 볼 수도 있었다. 평소 목소리가 큰 내게 좀 작게 얘기했으면 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는 친구들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후진국형 인간임을 느낀 적도 있었다.

철저한 마스크 착용은 불편했다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마스크를 철저하게 착용하고 다녔다. 심지어 공원에서도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에 마스크를 쓰고 있자니 입언저리에 땀이 흘러내리고 마스크가 땀에 젖기도 했으나 벗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달리기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조차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으니 땀 좀 난다고 벗을 수가 있었겠는가. 따라서 외출 시에는 혹시 있을 수도 있는 사태에 대비해 예비용 마스크를 두어 장 더 준비해서 갖고 다녔다. 그러나 이 또한 철저한 보건 의식과 선진화된 시민의식이라 생각하면 오히려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 아닌가 싶다.

정말 불편했던 것 한 가지는 꼭 얘기하고 싶다. 만나는 사람마다 진보냐 보수냐를 두고 논쟁하려는 듯이 달려드는 태도는 매우 나를 힘들게 했다. 당연히 나를 자기편이라 믿고 얘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왜냐하면 가만히 듣고만 있으면 되니까. 하지만 네가 내 편이 아니면 안 된다는 듯이 위협적으로 접근할 때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친한 친구들도 그랬고, 친인척들이나 선후배들도 어느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서 그 자리에 없는 선후배들의 좌익 경향이나 우익 경향을 비난하면서 내가 동조하기를 원했다.

난 그 어느 편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 어느 편도 모두 다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내 편 네 편으로 나누어 판가름하는 것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것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와 판단을 내리기보다 그 사안의 주체가 내편이니까 무조건 잘했고, 내 편이 아니니까 무조건 잘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한 쪽에 치우쳐서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사람들과 논쟁하기를 좋아하지 않다보니 화제를 다른 것으로 돌려 위기를 모면하곤 했으나 그때마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기 얘기를 계속하려는 친구들에게는 강력하게 더 이상 이런 대화를 하기 싫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과는 또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LA로 돌아오니 또 사람들이 물었다. 어디가 살기 좋은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다. 다 살기 좋다고 하면 성의 없는 답변이라 느끼지 않을까 걱정되고, 어느 한쪽이라고 말할 정도로 더 좋은 곳도 없다. 날씨나 생활환경이 다소 차이가 있지만 어디든 다 사는데 큰 문제는 없지 않은가?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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