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07/18/22  

친정 엄마는 신기하게 식구들의 생일 2-3일 전에 꼭 미역국을 끓이셨다. 처음엔 우연이겠거니 했는데 이게 한 열 번 정도 반복되니 일부러 그런가 싶기도 했다. 생일날 맞춰서 내가 끓여야지 하고 있다가 엄마가 이틀 전 선수 치듯 미역국을 끓여버리면 맛있게 먹으면서도 약간 김이 새곤 했다. 당일 다시 끓이기도 애매하게 꼭 2-3일 전에 미역국을 끓이셨는데 왜 그러시는지 이유는 물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그 무렵만 되면 미역국이 끓이고 싶으셨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성격이 좀 급하시니 생일을 생각해서 조금 서둘러 먼저 끓이셨거나?

그런데 올해 내 생일을 사흘 앞두고 남편이 미역국을 끓였다. "웬 미역국?" 했더니 막내가 미역국을 끓여달라고 해서 끓였다고 한다. 반드시 생일날 미역국을 먹고 선물을 받아야만 하는 것도 아닌데 이럴 때만큼은 고지식하게도 '미역국은 생일날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올해 대체 내 나이가 몇인데 생일이 어떻고 미역국이 어떻고 떠드는지...

나이 든 중장년들이 "요즘 내 나이가 몇인지 잊고 살아."라고 말할 때 '에이 말도 안 돼... 저게 대체 무슨 소리야?'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내가 그렇다. 곧 나의 생일인데 나는 이제 내 나이를 빨리 카운트하는 것이 쉽지 않다. 올해 연도에서 태어난 연도를 계산해야 간신히 내 나이가 나오는데 그럼 한동안 그렇구나 하다가 또 한참 지나면 '내 나이가 몇이더라?' 하는 것이다.

나이 먹는 건 조금도 반갑지 않지만 그래도 생일은 좋은 날이다. 매년 선물 받을 수 있는 날들이 있긴 하지만 크리스마스, 발렌타인데이, 어버이날과 달리 나만을 위한 날은 뭐니 뭐니 해도 생일이다. 그렇다. 생일이 유난히 좋은 건 생일은 정말 아무런 이유나 대가 없이 온전히 "나"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났음을 축하 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잘났거나 못났거나 그 어떤 사람이든 그저 존재 자체만으로 축복받고 축하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꽤 오래전부터 주변 사람들의 생일만큼은 꼭 기억하려고 애썼던 것 같다. 물론 거창한 선물을 주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기억하고 축하한다는 것은 꼭 알리고 싶었다. 한참을 못 만난 사이거나 다시 언제 보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생일이 떠오를 때는 잠시 망설여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축하하는 쪽을 선택한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해서 그 사람이 놀랄 망정 그 놀라움이 반가움까지는 아니더라도 불쾌함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년에 한 번 생일만큼은 용기 내어 소식을 전해도 괜찮으리라! 그 누구도 욕하지 않고 이상하게 생각지 않으리라! 이날만큼은 정말 아무런 이유나 목적 없이 뜬금없이 연락을 해도 괜찮을 것이다. 1년 만에 연락해서 앞뒤 다 잘라먹고 "생일 축하해"라고 말해도 이상할 게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은 SNS마다 생일 알림 서비스가 있어서 지인들의 생일을 챙기기가 참 편리해졌다. 휴대폰이 알아서 지인들의 생일을 알려오고 정말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편리하게 문자만으로 축하가 가능하니 얼마나 더 편해졌는지 모른다. 물론 선물도 클릭 몇 번만으로 가능해졌다. 정말 편하고 좋아진 게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지인의 생일을 챙기지 못했을 때 "깜빡 잊고 지나쳤다, 선물 사러 갈 시간이 없었다"와 같은 궁색한 변명 또한 늘어놓을 수 없게 되었다. 뭔가 좀 각박해졌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주변에 생일을 맞이하는 사람들에게 축하 문자를 보내보세요. 생각보다 큰 감동이 잇따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생일을 맞는 그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괜찮아요. 곧 제 생일이니 저라도 축하해주시면 어떨까요? 마음으로 보내주신 축하는 제가 기쁘게 잘 받겠습니다. 올해도 "나이 먹어서 생일은 무슨... 식구들과 밥 한 끼 먹으면 되지."라고 말했지만 나를 위한 생일 노래에 쑥스러운 웃음이 멈출 줄 모르고 내 앞에 밝혀진 생일 초를 보며 조용히 소원을 빌게 되네요. 이렇게 또 마법처럼 한 살이 더 늘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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