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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07/25/22  

살다 보면 가끔, 아주 가끔씩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기도 하고 공연히 불안하고 무엇에 쫒기는 듯한 기분에 휩싸일 때가 있다. 내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에 부딪혀 사는 게 힘에 부쳐 그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군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 이럴 경우 연령에 따라 사춘기, 갱년기 등의 이유를 달기도 하고 우울증, 심신 미약(心神微弱), 좀 심한 경우는 심신 상실(心神喪失) 등의 병명을 들먹이기도 한다.

주변을 살펴보면 대체로 어떤 목적을 갖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이런 기분에 잘 빠지지 않는다. 또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취미활동이나 운동 등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은 설령 이런 기분에 젖더라도 바로 빠져 나온다. 나의 경험과 주변 친구들을 보면 대체로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은 이런 기분에 잘 젖지도 않을 뿐더러 설령 빠졌다가도 쉽게 벗어나는 경향이 있다. 필자도 몇 해 전부터 뒤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으며 허무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더욱이 타운뉴스 앞뜰을 가꾸기 시작하면서 돌보는 뜰이 두 곳으로 늘어나게 되어 더더욱 그리 되었다.

몇 가지 볼 일로 해외 출장을 두 달 다녀왔다. 뜰 두 곳을 돌봐야 하는 사람에게 두 달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었다. 두 달 동안 집의 뒤뜰과 타운뉴스 앞뜰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떠날 때 언제 꽃이 피나 걱정했던 집 뒤뜰의 풀루메리아는 꽃이 만발해 있었고, 까마중은 작고 까만 열매를 잔뜩 달고 반겨 주었다. 떠나기 사나흘 전에 모종을 옮겨 심었던 들깨도 이파리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그러나 호박은 뜨겁고 무더운 날씨를 견디지 못하고 본래의 줄기와 가지가 없어지고 새로 나서 자란 줄기와 잎이 모종 상태의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타운뉴스 앞뜰에 만발했던 노란 갓꽃은 완전히 지고 갓 대와 잎은 노랗게 말라 있었다. 볼썽사나워 모두 뽑아 버리고 주변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도 제거하니 그 속에 숨겨져 있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올 초에 심었던 두 그루의 동백나무 중 한 그루가 잎을 다 떨어뜨리고 가지만 앙상한 채 고사(枯死)한 상태로 거기 있었다. 살아남은 한 그루는 잔디의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면서 뿌려진 물로 인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모양이나 물방울이 전혀 닿지 않았던 녀석은 생명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돌보지 않으면 결국 생명력을 잃게 된다. 정성을 다해 가꾸고 다듬어야 한다. 몸도 마음도 가꾸지 않으면 고사한 동백나무처럼 결국 말라 비틀어져 버리고 만다. 의무적으로라도 정기적으로 나를 돌봐야 한다. 몸만 돌보면 겉모습은 멀쩡할지 몰라도 마음속은 메말라 갈 것이고, 마음만 가꾸다 보면 겉모습이 보기 싫게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몸도 마음도 잘 가꾸고 돌봐야 한다.

고사한 동백을 바라보면서 속이 상하고 마음이 아팠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나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두 달 물 안 준다고 별일 없을 거라고 믿었던 내 잘못이다. 잔디도 매일 물을 주고 싶었지만 가뭄 때문에 도시 전체가 절수를 해야 하는 상황인지라 최소한의 물 공급으로 일주일에 두 번을 생각한 것이었다.

잔디도 여기저기 물이 잘 닿지 않는 곳은 누렇게 말라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꿋꿋하게 버티고 살아남은 것은 토마토였다. 토마토가 줄기를 뻗고 열매를 달고 있었다. 하루에 여남은 개씩 따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토마토를 한 알 한 알 조심스럽게 딴 후에 정성을 담아 물을 주고 있다.

물길이 닿지 않아 누렇게 된 잔디와 고사한 동백나무에도 매일 물뿌리개에 물을 담아 뿌려주고 있다. 잔디는 틀림없이 살아나리라 믿는다. 그러나 동백나무는 살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선뜻 뽑아 버리지 못하고 매일 물을 주고 있다. 내 안에서 자라다가 꽃피우지 못하고 고사해버렸을지도 모를 그 어떤 것들에게 물주는 마음으로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동백나무에 매일 물을 뿌려주고 있다.

살다 보면 가끔, 삶의 의미를 묻게 되고 불안과 좌절이 불쑥 찾아와 마음을 괴롭히기도 한다. 이 때야말로 몸과 마음에 물을 주고 잘 돌봐야 할 시간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반복하더라도 지겨워하거나 짜증내지 않을 만한 일들을 즐기며 산다면 그 어떤 우울이나 허무로부터도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믿는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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