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바캉스
08/01/22  

Everybody come to 해운대!! (Oh, Oh)
Everybody come to 광안리!! (Oh, Oh)
여름과 잘 어울리는 레게풍의 "부산 바캉스"라는 노래의 구절인데 부산은 왠지 내게 여름과 잘 어울리는 도시이다. 그래서 나는 여름이 되면 이상하게 부산이 생각난다. 부산에 딱히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십 대 이전에는 아예 부산에 가본 일조차 없어서 어릴 적 추억 같은 게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여름이 되면 부산에 가고 싶다.

그렇게 최근 3년 연속 여름마다 부산을 찾았고 지금 나는 해운대 해변에 누워있다. 아이들은 해운대 모래사장을 밟자마자 선스크린을 바르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순식간에 바다로 뛰어들어갔다. 남편은 봄부터 태닝샵에서 가꾼 구릿빛 피부를 뽐내며 아이들의 뒤를 따랐고 나는 바닷물 근처에도 가지 않고 파라솔을 지키고 있다.

우리 파라솔 바로 앞 파라솔에도 내 또래로 보이는 두 자매의 엄마가 누워있다가 바람에 돗자리가 날리며 모래를 뒤집어썼다. 의자와 짐 위로 쏟아진 모래를 치우며 얌전하게 생긴 여성이 아주 작게 “어우 짜증 나 짜증 나”라고 무슨 주문처럼 되새기고 있는데 어디선가 동질감이 불끈불끈 올라왔다.

그 옆에 다른 엄마는 해변에서 꽤 거리가 있는 유명 맛집에서 음식을 잔뜩 사들고 왔다. 그녀가 "어우 덥다 더워. 생각보다 너무 멀더라."하고 말하자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와 함께 의자에 앉아있던 남편이 “나도 이제 막 바다에서 나왔어. 애가 어찌나 매달리던지 힘들어 죽겠네” 하며 지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아이 엄마는 더 이상 힘들다는 말을 못 하고 사 온 음식을 꺼내 아이를 먹이기 시작한다. 그 옆에서 아이 아빠는 떡볶이, 순대와 튀김을 안주 삼아 맥주를 순식간에 두 캔이나 마셨다.

또 다른 파라솔 밑에는 나이가 좀 많이 들어 보이는 부부가 있는데 어린 자녀들을 따라다니기 힘든지 앉아서 연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ㅇㅇ야!" "이리 와!" "그렇게 하지 말라고!" "이렇게 하라고 이렇게!" "밥 먹어!" 등등 꼼짝 않고 앉아서 끊임없이 지시를 했다. 초등학교 3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두세 차례 같이 놀아달라고 왔지만 엄마, 아빠는 한결같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바닷가는 신나고 즐거워야 할 것만 같지만 사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두가 다 그렇게 계속해서 즐거운 것은 아니다. 따가운 뙤약볕, 그늘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습한 날씨, 여름 극성수기로 해변에 사람들은 바글거리고 해수욕장 주차장은 임시 폐업이고, 다닥다닥 붙은 파라솔 밑에서 모두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듯 파라솔마다 즐겁지 않은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이 유난히 더 지치고 힘들어 보인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여기 있는 걸까? 이 멀리 바다까지 와서 바닷물에 발조차 담지 않고 파라솔 그늘을 꿰차고 앉아 꼼짝도 하지 않으면서 왜 굳이 차로 왕복 10시간이나 걸리는 이 머나먼 부산에 와있는 걸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휴가를 꼭 바다로 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바다가 부산에만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여기서 다들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지......

여름 바캉스라 하면 모름지기 집에서 에어컨 틀어놓고 수박이나 썰어 먹으며 재미있는 영화나 보면서 쉬는 게 최고라는 것을 누구나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극성수기 트래픽에 바가지요금, 바리바리 싸온 짐에 주렁주렁 애들까지…... 아이고 내 발등을 내가 찍고 있다. 힘들다 힘들다 너무 힘들어.

하지만 대반전은 이게 끝이 아니라는 사실! 우리는 오늘 밤 집에 갔다가 다음날 또 짐을 싸서 캠핑장으로 향해야 한다는 것! 나는 사실 바다도 캠핑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가 싶지만 정말 잠시 잠깐의 기쁨, 청량감, 뿌듯함 등을 위해 우리는 또 내일 텐트를 치고 장작에 불을 지피고 고기를 굽고 그러겠지. 생각만 해도 덥고 힘들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면 '차라리 가지 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결국 아침에 일어나면 또 짐을 챙기고 있겠지. 그리고 "확실히 서울을 벗어나니 공기가 다르네, 고기는 숯불에 구워야 제맛이네, 아이들이 밖에 나오니 게임을 안 해도 잘도 노네." 이러면서 오길 잘했다고 나와 너를 토닥일 것이다. 재미있지만 너무 힘들고 그래서 후회도 하지만 결국 또다시 가게 되는 참 알 수 없는 이것이 바로 가족 바캉스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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