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사 부인 웨이트리스
04/23/18  

미국에서 면적이 39번째로 큰 메인주 주지사 부인이 해산물 식당에서 웨이트리스 일을 시작했다. 그녀는 페이스북에“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고 훌륭한 서비스를 받으면서 멋진 시간을 만끽하라”면서 식당 홍보에도 나섰다. 그녀는 돈을 벌어 토요타 신형 SUV를 사겠다는 속내를 비쳤다. 메인주의 주지사 연봉은 7만 달러라고 한다. 주지사들의 평균 연봉은 약 13만 달러로 생각만큼 많지 않은데 이것보다도 훨씬 적다.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여기며 페이스북에 식당 선전을 하고 언론과 인터뷰하는 주지사 부인을 보면서 역시 미국이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 우리 한인사회도 마찬가지다. 존경받는 목사의 사모들이 식당에서 일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심지어 생업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목사들도 적지 않다. 또 은퇴했다가도 다시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인들 가운데 직업의 귀천을 가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는 체면이나 형식보다 실질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사회풍토 때문일 것이다.

 

 

지난 1111호에서 소개했던 한국에서 만난 동창생은 정년퇴직 후 이년을 직업 없이 지내다가 다시 일을 시작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친구는 춘천의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집에서 나와 자기 팀원을 태우고 가서 일하고 저녁에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부인이 건설현장에서 노동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지만 하루 일당으로 18만원에서 12만 원 정도를 번다며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는 한 달에 100만원이 조금 넘는 액수의 연금을 받고 있어 아껴 쓰면 생활에 큰 걱정은 없지만 그냥 노는 것보다 일하는 것이 훨씬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의 얘기를 들으며 한국사회가 과거에 비해 많이 성숙해졌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미국 사회와 한국 사회를 단순하게 비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미국은 미국 사회의 규범이 있고, 한국은 또 한국 나름의 규범이 있기 때문이다. 두 사회의 다른 규범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낫고 어느 것이 더 부족하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무리 오랫동안 지켜온 규범이라도 발전을 거듭하는 사회에 걸림돌이 된다면 과감하게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 양반은 비가와도 팔자걸음으로 느릿느릿 걸어야 했고, 냉수를 마시고도 체면을 위해 이를 쑤시는 존재였다. 하지만 신분제도가 사라지고 실용주의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면서 이제는 체면보다는 실속을 차리는 사회풍조가 형성되었다.

 

 

최근 한국의 모 국회의원이 딸과 오빠, 동생을 보좌관, 비서관 등으로 채용한 것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러자 국회의원 보좌진들 중 약 30명이 사표를 제출했다는 씁쓸한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해당 의원들이 잘못을 시인하고 국민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했다는 것이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자신의 친인척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이다.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한국 사회의 희망을 엿볼 수 있다. 사회 발전에 따라 높아진 한국 국민들의 의식 수준과 엄정한 잣대는 한국 사회의 성숙도를 한 단계 더 높여 놓은 것이다.

 

 

현재의 사회 모습을 과거의 잣대로 가늠할 수 없다. 그리고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과거스러운 모습’과 그로 인한 갈등은 한국 사회가 더 발전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진통이다. 그런 갈등과 진통은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지듯이 대한민국을 세계 최고의 사회적 성숙도를 지닌 나라로 만들어 가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한다는 메인주 주지사 부인의 기사를 읽으면서 조국의 현실을 떠올리는 것은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땅을 떠나 살아가는 이민자일수록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더 궁금하고 또 그곳에 대한 기대를 더 크게 가지는 것은 그곳이 바로 고국이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조국을 떠나 살지만 언제나 그곳을 그리워하고 고국의 발전을 기대하는 마음, 조국을 떠나 살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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