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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의지계 교육정책은 안 된다
08/15/22  

5세 초등학교 입학 정책을 발표했던 장관이 여론의 질타를 견디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예로부터 교육을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했다. 백년 앞을 내다보는 큰 계획을 수립해서 실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교육 정책을 수립하거나 바꿀 때는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서 신중하게 세워야 할 것이다.

장관이 물러나자 이번에는 차관이 ‘방과 후 과정과 돌봄 시간을 늘리는 「초등 전일제학교」 추진 방안을 10월까지 마련하고 내년부터 초등 전일제학교를 시범 운영, 2025년부터 전체 초등학교로 확대한다. 초등 돌봄교실 운영시간도 맞벌이 학부모 수요를 반영해 올해는 오후 7시, 내년에는 저녁 8시까지로 늘린다. 교과 중심인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은 학생 수요에 따라 인공지능(AI) 교육이나 예체능 등으로 다양하게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교육부가 만 5세 입학의 대안으로 초등 전일제를 추진하는 것으로 '학부모 돌봄 부담 경감'이라는 목표 때문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교사들이 들고 일어났다.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은 9일 전일제 반대 성명을 내고 ‘아이들을 11시간 붙잡아두는 정책의 중심에 아동이 있는지 묻고 싶다’며 ‘초등 전일제는 어른의 편의만을 위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초등 전일제는 근본적으로 돌봄 책임을 학교가 떠맡는 것이다. 교육과 돌봄은 분리되어야 한다. 교육은 학교가 맡고 돌봄은 가정과 지자체가 맡아야 한다. 7살 아이를 밤 8시까지 학교에 있게 하는 것은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수립된 정책을 많은 사람들이 반대한다고 하룻밤 자고 나서 걷어 들이는 것은 정책을 수립할 때 그만큼 심각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만일 철저한 검증과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다면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어떤 노력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가 거세지자 바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없었던 일로 하는 것은 교육을 백년지대계가 아니라 임시적인 편의를 위해 권의지계(權宜之計)로 삼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 교사 생활을 할 때었다. 당시 한 기관에서 중고교생 영어 말하기 대회를 개최했는데 참가 자격에 외국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은 사람은 안 되고, 영·미권 국가에서 3년 이상 살다 온 사람도 안 된다는 조항이 눈에 거슬렸었다. 왜 영어말하기 대회를 하면서 영·미권 국가에 살다 온 사람은 안 된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웃기는 것은 외국어고등학교 재학생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영어말하기 대회를 하면서 외국어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참가 자격이 안 된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지금도 이런 대회가 있는지 또 있다면 아직도 이런 자격 제한이 있는지 궁금하다.

요즈음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교육정책에도 이와 비슷한 것이 있다. 바로 '외국어고등학교 폐지'다. 외국어고등학교는 특수목적 고등학교 중 외국어를 중점적으로 교육하는 학교이다. 전국에 31개교가 있으며, 매년 약 7,900명을 선발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11년부터 외국어고는 영어 내신만으로 학생을 선출해야 하며, 한 학급 당 인원수는 25명으로 제한하고, 영어와 전공 외국어 교과에서 최소 80시간 이상 이수하도록 편성 했다. 그리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교장·교감·교사들을 징계키로 하였다. 이는 그동안 외고에서 벌어졌던 편법 교육과정 운영을 방지하며, 어문 계열 진학을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제한을 두고 압력을 가했으나 여전히 외국어고등학교 출신이 명문대학에 많이 입학하니까 외국어고등학교 폐지를 공론화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장관이 입각할 때마다 외국어고등학교 폐지를 공약처럼 내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회 계층 편 가르기’, ‘잘하는 학교 끌어내리기’식 발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교육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무시하는 정책인 것이다. 오히려 특수목적의 우수한 학교들을 더 많이 만들어 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좋은 교육을 받도록 함이 마땅하거늘 오히려 우수 학교들을 없애고 하향화시키겠다는 발상이 어처구니없다.

교육정책을 바꾸거나 새로 추진할 때는 무조건 없애고, 제약하기보다 미래를 내다봐야 할 것이다.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하나하나 새겨듣고 교육주체들의 충분한 여론수렴을 거친 후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교육정책이 정치권력에 좌지우지되어 권의지계(權宜之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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